선천적인 것일까?
후천적인 것일까?
내가 가진 성격은 어디에 가까울까?
나는 사실 악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선과 악의 기준은 다르다.
뭐가 선하고 악하다고 말하기도 애매할 정도로
누구나에게 자신한테 그리고 타인한테
재는 도구만 다를 뿐이지 모두가 다르다.
나의 기준에서 나는 악하다.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환경 탓인지
실질적인 나의 생각에서 나오는 본질적인 나의 악인지
구별되지 않았다.
아마도 선천적으로 악함을 갖고 있었고 환경 또한 좋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것에도 아무 생각과 감정이 들지 않았으며
누군가에게 가까운 관계여도 피해를 주는 것을 아무렇지 않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누군가에게 잘해주거나
나누어주거나 무언가를 헌신하면서 해주는 것 또한 좋아했다.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것과 좋아하는 건 다르다.
하지만 둘이 공존하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중사고에 지나치지 않았다.
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에게는 두 가지의 자아가 있을 뿐
조절하는 것과 선택권은 나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나 스스로를 속였다.
항상 나 스스로를 속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맞다고 생각했으니까.
결과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선택을 했고 지금까지 그렇다.
나는 남에게 피해를 줘선 안 되고 항상 남을 위해 나를 자제해야 한다고 되뇌었다.
하지만 나 자신을 통제하고 세뇌하며 속이는 건 나 자신으로 충분했어야 했지만
그와 다르게도 항상 내 환경 속에서는 나를 세뇌하려는 사람뿐이었다.
어째서 이런 상황이 형성되었을까?
왜 모든 것이 나에게 불리하게 되었을까
생각하는 건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환경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항상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이 있으면
그쪽으로 매일매일 연습했고 그것을 즐겼다.
나의 목표는 항상 나를 넘어서는 나였다.
오만함도 아니고 자만심 따위도 아니었다.
나를 이기는 것 말고는 의미가 없으니까였다.
나는 항상 비교를 당하면서 살아왔기에
나 자신마저 남과 비교하고 싶지 않았다.
나 또한 매번 나의 기록을 경신하는 것을 좋아했다.
충분히 나의 인생을 환경을 위치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환경이라는 커다란 틀 속에서
어린 나이의 나는 바꿀 수 있는 요소가 없었다.
그렇게 나의 꿈과 목표는 내 삶 속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었다.
환경을 바꿔낸다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나에게는 충분한 기회가 있었다.
그 기회를 못 잡게 한 나의 주변인을 정말 싫어하며
나에게 매우 큰 피해를 끼친 자들은 매우 증오한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용서하려는 생각도 있지만..
내게 사과를 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나는 정신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아무 감정을 갖지 않는 것만이 오히려 편안해질 것 같았다.
수많은 폭력과 세뇌 속에서 무엇을 해야 나는 바꿔낼 수 있었을까?
없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나를 유일하 믿어주신 선생님과 계속 갔다면
사실 그게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결과만 놓고 봐도 이렇게 절망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나의 밝음과 특유의 무언가로
언젠가 나를, 나의 위치를 뒤틀 수 있다고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다.
또한, 나와 비슷한 환경 속임에도 불구하고
바꿔냈거나 바꾸려고 시도한 사람
혹은, 이미 그렇게 행동에 실천해서 성공한 사람까지도
전부 존경한다.
나는 정신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솔직히 나는 매우 정신력이 강인하다고 느끼는 편이다.
내가 살아있다는 것이 증거다.
하지만 정신이 버틸 수가 없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이후로 나는 꿈과 목표를 잃었다.
혼자 살게 되면서 그나마 자유를 얻고 나서는
문득 접하게 된 게임을 알게 되고 흥미가 생겨서
그 게임도 열심히 해서 충분한 결과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사실 인정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그냥 애정결핍에서 나오는 유치한 행위였을 뿐이다.
이미 없어진 감정을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환경이 바뀌어야 할까?
내가 愛(애)를 깨달아야 할까?
내게 중요한 무언가가 생겨야만 할까?
사실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살고 싶지 않았으니까.
내가 누군가에게 내가 살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밝혔다면
아니, 내게 들은 적이 있다면
적어도 내가 신뢰하고 있거나
아예 나와 모르는 사이라는 것이다.
둘은 매우 다르지만 공통점도 있다.
내게 필요한 이론과 직관은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나의 과거로부터 나오는 무의식적인 열등감이나
PTSD 같은 부분은 감히 고쳐내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나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
항상 그 사람의 본질을 중심으로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나를 생각하는 나마저도 본질을 꿰뚫고
나의 과거나 아픔을 치유할 방법을 차례대로 극복해 나갈 수 있다.
나에게 가장 필요한
아니, 나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한다면
그건 나의 신념과 생각마저 바꿀 수 있는 나의 사람들뿐이다.
처음부터 내 주변에 있던 사람이 아니라
살면서 내가 소중하다고 느끼는 나의 사람들만이
내가 살 수 있게 만들고
항상 내가 나를 고칠 수 있는 마음을 유지하게 해 준다.
나는 말을 못 하는 편이기에
내가 무슨 말을 적으려는지
내 생각을 고스란히 글로 적고 싶지만
뭔가 다음부터는 일기라 할지라도 정리를 하면서 적을까 싶다.
이렇게 대화하는 듯이 풀어내는 일기보다 그쪽이 나을지는 모르겠지만
사실 일기인데 어느 쪽이 더 좋을까 고민하는 것도 우습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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