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나이부터 줄곧 밴드 노래를 들어왔다.
단순하게 봤을 때는 신나는 음이 항상 바탕이었기 때문이다.
어려서 이해하지 못한 가사의 내막을
점점 나이가 차면서 알게 되었다.
왜일까? 어째서 락의 노래들이
항상 슬픈 가사나 사연이 숨어있는 이유가 뭐였을까?
알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그들처럼 락에 빠지게 되었다.
어느 정도의 나이에 도달하고 시야가 넓어지면서
다들 어째서 락에 미칠 수밖에 없었는지
그런 슬픈 감정을 가졌던 사연이 뭐였을까라고 항상 궁금해왔다.
뭔가에 몰두하지 않는다면 정신이 무너질 것이 자명했다.
그토록 그들이 살고자 했던 것처럼
내가 살고자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본질적으로 나의 악행을 알고 있었으나
내가 이것을 통제할 수 있음을 알고 있고
악의를 가지고 하는 행동이 아닌 것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까지도 특정한 카테고리에 묶여있는 언행에 분노하거나 슬퍼한다.
그것은 바로 정의와 이상이다.
내게 정의는 항상 올곧은 방향으로 흘러가야만 한다.
항상 강자는 약자를 도와야 하며
그 순리대로 쭉 사이클이 돌아가는 것이다.
악한 자는 그에 따른 벌을 받아야 하고
선한 자를 위한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이상주의는
이제 와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왜 다들 정의와 이상을 꿈꾸는지에 대한 이유를 물어보면
사람으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나는 내가 이때까지 당해온 세뇌, 폭력과 같은 그런 행위들이
다시금 누군가가, 내 사람이라면 더욱더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자 하는 이유는 정의 실현 혹은 자아실현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렇지만 내게 주어진 것은 그렇게 큰 업적을 행동을 이룰만한 것들이 아니다.
굳이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아?라고 되뇌고 만다.
정의 실현을 논할 수 있는 자격이 내게 있다고 보지도 않는다.
항상 올바르게 살아왔는가?
후회할 행동과 선택을 하지 않았는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는가? 등에 대한 질문을 듣는다면
당연히 나는 네, 아니오가 아닌
침묵을 택할 것이다.
뭘 고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긍정은 당연히 하지 못할뿐더러
부정을 한다는 것은 내게 이미 죄가 수없이 쌓여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내게는 그런 행동과 선택이 많을 것이다.
언제나 합리화하며 지나쳤을 뿐이다.
어쩔 수 없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라든가
도대체 타인을 위한다는 자가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대체 내가 사는 이유가 뭐야?라고 물어본다면
이젠 대답할 수 있다.
태어난 이유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어떤 것이라도 좋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대단한 것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안다
태어난 자는 모두 소중하다고 느끼고 있으니까.
그것 또한 타인을 위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의 기초적인 생각을 바꿀 수 있게 해 준 것은
역설적이게도 항상 나에게 피해만 주던 사람들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람들로부터 피해를 입은 내가
사람들에 의해 바뀔 수 있었다.
19살에 처음 집을 나와 살게 된 이후로
처음 알았던 것이 정확하게 언제인지는 기억할 수 없지만
너를 알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정을 가진 것은 처음이었다.
너를 알기 전까지는 내가 느낄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은 슬픔뿐이었다.
어째서인지 너는 항상 나를 이해해 줬다.
그 누구도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던 내게 있어서는
유일하게 누군가를 의지하게 되었다.
서로 순수한 선의로 바라보았다.
내게 있어서는 처음으로 느껴본 감정이었다.
적잖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이후로는 나는 사람을 보는 안목을 늘렸고
내가 마음에 들거나 나와 잘 맞는 사람과 친해질 수 있었다.
내가 아직까지도 누군가와 친해지거나
누군가와 더 가까워지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초식은 당연히 너로 인해서라고 생각한다.
네가 없었다면 현재의 나 또한 없을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감정을 알게 된 나는
비로소, 좋아했던 노래들의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사람에 대한 혐오감이나 증오감까지 차있던 내게 있어서는
내 마음의 벽을 무시하고 내 앞에 선 네가 얼마나 빛이 나는지 선명하게 알 수 있었다.
내 마음을 전부 치료할 수는 없었겠지만
너의 구원이 있기에 나의 고립된 감정들은
몇몇 살아날 수 있었다.
나는 언제나 누군가에게 나의 너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나의 마음을 고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사람을 고칠 수 있는 건 사람뿐이다.
누군가 사람은 고쳐 쓰는 것이 아니다고 말을 해도
그 사람이 정말 마음에 든다면 고치려는 노력을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네게 받았던 노력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너 역시 내 별에 다시 빛을 내기는 어려웠겠지만
나 또한 네가 준 만큼 누군가에게 그런 노력을 하고 싶은 상황이 온다면
나는 반드시 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네가 나에게 준 인정이
남에게 돌아갈 뿐이다.
나의 더욱 많은 감정이 더욱 살아날 수 있도록
도와준 네게 영원히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너로 인해서 내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내 과거의 일부를 고쳐줘서 고마워.
언제나 마지막까지 전하지 못한 말이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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