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했다고 생각한 건 이번 뿐만이 아닐 것이다.
한심한 건 정말로 무엇일까?
뭐가 그렇게 문제였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종교라는 개념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환경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종교따위는 믿어본 적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미래에도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나는 어째서 종교라는 개념이 존재하는지 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신으로 받들어 기도한다?
받드는 것조차 이해할 수 없지만 기도를 해서 뭐가 변한다는 것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 했다.
뭐가 문제였을까?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아니면 기도를 해야만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현실이?
이해하지 못 했다.
줄곧 종교가 존재하는 환경 속에서 자란다고 종교 따위를 믿는 것은 아니다.
따위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내게 있어서 세뇌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나는 나 자신만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종교는 마음이 나약한 자를 노리는 사기가 너무나도 빈번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마음이 나약한 자는 무언가의 존재에게라도 의지를 하길 원한다.
그렇지 않으면 버틸 수 없으니까.
나는 항상 종교의 환경 속에서 자라면서 주변 사람들을 관찰해왔다.
대체 어떻게 이런 걸 믿을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
주변에 그렇게 믿을 사람이, 자신조차 믿지 못하는 것일까?
가난한 것이 문제가 아니다
배움이 짧은 것이 문제도 아니고
단순하게 변할 수 없는 나약함, 즉 정신력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내가 믿지 않는 건 정신력이 강해서인가?
그렇다고 생각하지만 사람마다 의견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변에 종교를 믿는 자가 있어도 딱히 물어보진 않았다.
어째서 종교를 믿는 것이냐고
선생님도 종교를 믿으셨었고 내게 권유를 하였지만
당연히 나는 그럴 생각이 없다.
항상 불쌍하게 생각했다.
종교를 믿는 것에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도와줄 사람이, 본인을 달굴 본인이 없는 것인가?
천국도 지옥도 존재하지 않는다.
선과 악의 개념은 아주 단순하게도
발효와 부패의 개념과 동일하다.
내게 득인가 실인가?
항상 사회는 선을 행하라고 가르치고
악을 행한 자에게는 업보가 돌아온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실제로도 그런가?
인간을 떠나서 모든 존재가
다른 생명을 뺏지 않고서 살아갈 수 있는가?
악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그것 또한 종교 속에 정답이 존재할까?
세상은 태어날 때부터 불합리하다.
한계가 명확하게 존재하고 있으며
뛰어난 사람의 재능을
평범한 사람의 노력으론 뛰어넘지 못한다.
자본주의가 아니었어도 항상 누군가의 것을 빼았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현실에서
잔혹함이 없는 것이 가능할까?
진정한 악이란 무엇일까?
복수도 선행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항상 선을 행하고 악을 배척해야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악의 기준은 무엇이고
대체 누가 업보를 내린다는 것인가?
종교에서의 가르침은 항상 선을 위한 행위밖에 없었다.
대체 누가 업보를 내려줄 것인가?
그때까지 기다리기만 해야하는건가?
항상 착하게 사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착하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나는 사실 착하다라거나 나쁘다라는 말은
항상 상대적이라고 생각한다.
득과 실, 그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응 착하네라고 말한다면 득이 되는 행동이란 것이다.
그렇기에 어릴 때부터 친절 따위는 겉보기에만 중요한 가면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이런 생각과 마음을 알기에
다른 자아를 생성할 수밖에 없었다.
자아 전환의 조절은 내 의지로 할 수 있지만
굳이 내가 정한 나쁜 쪽으로는 바꿀 생각이 잘 없다.
그런 상태로 변했을 때의 나는 매우 냉정하여 다른 사람들 따위는 신경쓰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극심하게 피해를 받는 경우가 아니면
그런 방어적 행위는 취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선행을 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선이란 돌고 돌아 내게 오게 되어있다.
내가 살아오는동안 행한 선의 행동은
내게 반드시 돌아오게 되어있고
악의 행동또한 돌아오게 되어있다.
무엇이든지 돌고 돌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 신념이다.
그렇다.
내가 종교 따위가 한심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 사람이라면,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겨우 종교가 아니라 나를 믿고 의지해줬으면 했던 것이다.
한심한 것도 불쌍한 것도 나 자신이다.
그렇게나 선의 행동을 행한 것은
언젠가 미래의 나에게 돌아와줬으면 하고 바란 것이다.
물론 양심통이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 또한 내가 느끼는 부분만 느낀다.
특히 물질적인 부분에서 그렇게 느낀다.
불쌍한 건 결국 내 자신이다.
너무나도 힘들고 괴로워서 종교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 사람을
그런 내 사람을 도와주지 못하는 나는
대체 뭘 돕겠다고 생각하는걸까?
나에겐 그런 능력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항상 누굴 돕다고 생각하기에는
내가 가진 능력이 도대체 뭐지?
현실적인 능력이 전혀 없다.
항상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나 중요한 사람에게 말하곤 한다.
너가 죽을 위기에 처한다면 내가 대신 죽을 판단을 할 것 같다고.
그런 상황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행동할 것이라 생각하기는 한다.
내게 정말 소중한 사람이 죽는 것
그런 감정을 알고 싶지 않다.
정말 그렇게 된다면 나는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그것이 내가 누군가와도 어느정도 이상으로 가까워지지 않으려고 하는 이유 중 하나다.
배신을 너무 당해서 뿐만이 아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믿는 것은
종교와 무엇이 다를까라고 물어본다면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너는 그런 마음이었을까.
너무 늦게 알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