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나의 이야기

나를 이해하려는 네게 나를 소개하는 안내서

2025

인연

vnfma0225 2025. 1. 20. 16:44

수많은 기억의 별과

 

셀 수 없이 많은 감정의 별이 모여

 

나를 구성하고 있다고

 

항상 사람을 우주로 비유하고는 했다.

 

그것의 까닭은 별로 복잡하지 않다.

 

별의 탄생과 소멸이

 

생각과 감정의 구조와 비슷했기 때문이다.

 

또한, 우주가 아니라면 표현할 방법이 없을 만큼

 

드넓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내 수 없이도 넓은 우주 속에서

 

그저 스쳐 지나가는 혜성 따위가 아닌

 

내게 중요한 별로 남아있는 누군가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원래 지금처럼 사람에 대한 믿음이 없지 않았다.

 

혼자 있어도 상관이 없었을 뿐이지

 

그 누구보다도 남들의 관심과 인정을 받는 것에 대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매우 중요한 차이점이다.

 

나는 매우 감정이 많은 사람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울기도 하고

 

언제나 밝게 웃기도 하고

 

무엇을 해도 무엇을 봐도 느낄 수 있었다.

 

그것만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지금처럼 빛이 깜박이는 상태가 아니었다.

 

언제나 환하게 보일 정도로 밝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우주가 칠흑과도 같은 어둠에 갇혀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 대해 아무리 떠올려봐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더 이상 생각이 나면 안 된다고, 떠올리지 못하게 하는 것처럼

 

시스템적으로 막힌 것처럼

 

무슨 짓을 해도 특정 시간대를 넘어서 기억을 다시 볼 수 없었다.

 

나는 평소에 모든 것을 기억 속에 남겨

 

되돌아보기에 따로 어딘가에 기억을 남겨두거나

 

그런 행위를 한 것이 전혀 없기 때문에

 

시간을 되돌려볼 방법이 전혀 없었다.

 

그중에서도 너무나도 큰 기억만이 파편처럼 기억날 뿐

 

볼 수도, 더 떠올릴 수도 없다.

 

이건 과거의 내가 나름대로

 

기억의 망각을 이용해서

 

너무나도 큰 자괴나 슬픔을 느끼지 못하게

 

어느 정도 막는 자기 방어가 아니었을까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부분들은 고칠 수 없기에

 

어떻게 해야 할까는 고민할 이유가 없다고 느낀다.

 

아무리 고민해도 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는 풀려고 고집부리는 것보다

 

다음 문제로 넘어가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가치관, 신념, 배경이 가장 중요하다.

 

적어도 어느 정도는 맞물려있어야 진정한 이해라는 개념으로 통찰이 가능하다.

 

살아오면서 진심으로 이해라는 감정을 느껴본 적은 단 한 번 뿐이지만

 

단 한 번 뿐이기에 더욱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한 감정을 느꼈다는 것이 더욱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살면서 나에게 남아있는 감정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메마른 감정 속에서 꽃이 피어날 수 있을까?

 

매번 고뇌하며 생각했지만

 

그 단 한 번의 경험이

 

나에게 커다란 변화를 주기엔 충분했다.

 

절대 느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전의 시간들이

 

그 감정은 전의 생각들이 틀렸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에겐 이해라는 것은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였다.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하기 위해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

 

그래야 내가 진정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이때까지 무슨 감정과 생각을 느꼈는지

 

나의 우주를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우선이었다.

 

 

 

나는 18살에 알게 된 한 사람으로부터 인해서

 

사람의 인연이라는 감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나를 매몰차게 이용하고 버리거나

 

항상 나를 시기하거나 방해하는 사람들뿐이었다.

 

딱히, 내가 무얼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무언가의 잘못을 했다고도 생각하지만

 

그 두 가지 생각 가운데서, 이 정도로 불행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

 

 

 

가치관이나 신념은 말뿐으로도 약간의 이해를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배경이라는 것은 아예 다르다.

 

누군가를 논리적으로 설득하기 위해서는

 

알고리즘처럼 논리적인 체계 속에서 그저 주어진 말들 속에서

 

그럴싸하면 납득이 될지언정

 

배경이라는 것은 감정과 체험까지 요구한다.

 

 

 

 

예로 들면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던 일에 공감하라고 하면

 

그 느낌과 감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저 풀 숲을 지나갈 때 거미줄에 닿는 것을 떠올려본다면

 

불쾌한 감정을 떠올릴 수는 있어도

 

누군가에게 죽기 직전까지 몰리는 상황을 떠올리라고 하면

 

그 감정이나 상황을 느끼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같은 배경이라는 것은

 

100% 일치란 없겠지만

 

엇비슷하게라도 맞는 배경은

 

서로에게 큰 이해 공감대를 선사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내가 어떤 일을 당했을 때

 

그 이야기를 했을 때 이때까지의 모든 사람들이

 

경험 상, 이해하지 못하는 걸 이미 알고 있을뿐더러

 

그로 인해서 더 이상 말하는 것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한 명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 나타나준다면

 

나도 모르게 감정이 연결되어 서로의 별들이 연결되어

 

더 큰 은하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정신적으로 큰 지지와 의지, 그리고 더 나은 생각의 방향성을 추구할 수 있다.

 

그렇기에 더욱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내게 있어서

 

단 한 명이라도 나타나준 것은 매우 뜻깊은 일이다.

 

굳이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뿐만이 아니라

 

내게 특별한 감정이나 기억을 줄 수 있는

 

혹은 주었던 인연들을

 

그런 인연들을 놓치고 싶어 할 리가 없다.

 

감정적으로 독립하고 난 순간부터는

 

내가 선택하고 내가 만나는 인연들이

 

곧 내 사람들이자 가족이다.

 

그전과 후는 다르다.

 

어떤 큰 일을 하고 싶거나

 

어떤 목표를 향해가고 싶을 때

 

사실 내 생각의 입장에서 말해본다면

 

그런 인연들을 두고서 그런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정말 말 수가 적은 나도

 

좋은 인연들은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나는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이미 안다.

 

현실적으로 너무 힘들지라도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지라도

 

좋은 사람과 함께 있을 수만 있다면

 

언제나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니까.

 

역설적이게도 그런 좋은 사람에게는 더욱더 말하는 것이 꺼려지지만

 

자신의 약점을 들키는 것 같아서 말하는 게 두려워지지만

 

배신당한 적도 많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인연이라고 생각이 든다면

 

서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상대방도 분명히 들어줄 자세가

 

아니, 이미 준비되어 있다.

 

그저 남들을 자신의 감정받이로 이용하다 보면

 

나 또한 그런 사람으로 쓰일 것이고

 

반대로,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더욱더 좋은 인연들만이 남아서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공간 속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그저 같이 있기만 해도 좋은 사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만남은 작별인사의 수에 비례하기 마련이다.

 

그 누구도 빠짐없이 본인이 수용할 수 있는 인연의 수는 절대적으로 정해져 있다.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인연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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