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루에 세 번,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은 오늘을 만족했고 행복하다는 의미다. "
문득 어린 날의 내가 보았던 문구 중 하나다.
나는 이 말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의 꿈은 저 멀리 있는 하늘에 있다.
하지만 그 거리만큼이나 꿈은 나와 멀었다.
꿈을 이룰 수 없었던 나는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찾곤 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뭘까?
내 장점과 단점이 뭔지 파악하고 있는 나에게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뭐냐고 묻는다면
없다.
내가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는
명분이 필요하다.
즉, 이유가 필요하다.
무언가를 하기 위해 태울 연료가 필요하다.
그 연료로 인해 나는 작동하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가장 확실하고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는 건
나의 순수함, 다정함 같은
그런 인간적인 면모를 버리고
냉정하고 계산만 하는 나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것은 내게 큰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언제나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냉정함을 유지하며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이제는 뭘 해야할지
냉정하게 판단해 보자.
냉정해야 한다는 말은 곧
내게서 누군가를 위함이라는 마음을 지워야 한다는 것이다.
모두를, 모든 것을 나를 위해 사용하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것을 나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나의 두 자아가 공존할 수 있을까?
포기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포기해야 할까?
과거의 나는 그저 누워서 하늘을 보며
꿈을 꾸는 그냥 순수한 어린이였다.
하늘은 본다는 것은 그저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었다.
파일럿이 되고 싶은 아이가 비행기를 보는 것처럼
나의 우주에는 저 하늘과 진리만이 존재했다.
그저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도 인생의 낙을 채우기엔 충분했다.
하지만 나에겐 족쇄가 채워지기 마련이었고
그로 인해 언제나 밖에서 하늘을 볼 수 있는 시간은 밤이 유일했다.
어이없게도 그 밤의 시간으로 인해서
나의 천문학적인 꿈은 더 커지긴 했다.
뭐, 그만큼 나는 하늘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굳이 따지자면 가만히 누워서 생각을 비울 수 있는 그 시간이 소중했다.
나에겐 아무런 존재 따위 필요 없었다.
그저 자연이 재미있었다.
그 무렵, 초등학생이었을 때였다.
" 하루에 세 번,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은 오늘을 만족했고 행복하다는 의미다. "
매우 마음에 와닿았던 말이었다.
살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잊은 적이 없을 정도로 좋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언제나 외출 시 하루에 세 번 이상을 꾸준히 보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보지 않는다.
나에겐 더 이상 꿈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게 하늘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내게 남은 꿈도 삶의 의미도 사라지기 무렵이었을 때
나에겐 정말로 큰 시련이 다가왔다.
그날은 죽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죽을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죽음에 다가갈 때마다
그 생각이 전부 틀렸다는 듯
언제나 나의 마음을 회유하고 만다.
정말로 죽음 앞에 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살고 싶어지는 마음뿐이었다.
그렇기에 다시 하늘을 보려고 노력했다.
이번의 하늘도 역시나 언제나 빛났다.
아무것도 없는 내가 버틸 수 있던 이유는
하늘, 꿈 때문이다.
내가 이루고 싶었던 것이 뭘까?
해답은 언제나 하늘에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내가 나중에 죽기 직전이라면
그때 내 기억을 조작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한다면
내가 달로 갈 수 있는 기억으로 바꿔달라고 항상 말해왔다.
달에 간다는 것은 그다지 의미가 있는 행동이 아니다.
그저 이루고 싶지만 이룰 수 없는 수평선과도 같다.
다신 돌아갈 수 없는 내 과거의 그리움들은
언젠가 꿈을 이룬다면 아름다운 기억과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언제나 항상 하늘을 보려고 노력한다.
나의 진짜 감정, 마음, 생각이 뭔지는 몰라도
나를 생각해 주는 한 사람이 있고
나 또한 그 사람의 생각으로 가득하다면
아무렇지 않던 일상 속에서
너라는 특별함이 빛나기에
더 이상 아무렇지 않은 일상이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 잠시 감정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더 이상 내 사람을 놓치는 경험을 하고 싶지 않으니까.
항상 그 자리에서 빛나는 하늘을 지켜보며
나만의 꿈과 순수함을 잃지 않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