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나의 이야기

나를 이해하려는 네게 나를 소개하는 안내서

2025

노력하지 않았다면

vnfma0225 2025. 3. 6. 03:17

나는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다.

 

남들이 느끼는 그런 감정

 

소위 말하는, 도파민이나 성취감

 

혹은 가벼운 즐거움, 행복 그리고 기쁨

 

그런 것이 없는 이유를 처음으로 말해보려고 한다.

 

 

 

 

나는 순수한 아이였었다.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에 대한 호기심만으로도

 

상상과 그에 대한 해결을 논하는 것만으로도

 

단순히 그런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워하고 잘 웃는 아이였었다.

 

어째서 나는 스스로 감정을 배제하게 된 걸까?

 

아니, 스스로 한 것이 맞을까?

 

나는 항상 환경이란 것을 강조한다.

 

환경은 그저 단어로 표현하기 좋을 뿐이지

 

깊은 의미로 표현해 보자면

 

나의 이야기라는 씨앗을 심는 땅의 수준을 논한다.

 

내 이야기의 시작을 정하는 것도

 

내 이야기의 방향을 조정하는 것도

 

내게 달려있지 않다.

 

어째서?

 

단순하게도, 내게는 선택권이 없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에겐 선택권이 주어지지만

 

내게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나는 그냥 남들과 다르다.

 

그걸 감당할 환경이 전혀 아니었다.

 

내가 남들과 다른 부분은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다르다.

 

내게는 신념이 일찍 깃들었다.

 

안 좋은 환경에서 자랐기에 더욱더 확고해질 수 있었다.

 

나는 항상 선을 강조했고, 악을 배제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악의 행동을 취하지 않았더라면

 

정신이 무너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나의 악한 행동을 합리화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언제나 노력했었다.

 

나는 무엇을 해도 노력한다면 항상 최상위를 향해 갈 수 있었다.

 

내가 하고 싶어 했던 것들은 분명히 존재했고

 

그 길을 걸으려고 매번 노력했지만

 

항상 나의 환경은 그걸 억제했다.

 

억제? 세뇌와 협박까지 이어지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용서하라고 용서하라 해도 내게는 쉽게 되지 않는다.

 

어렸던 나는 항상 나의 잘못인 줄 알았을 뿐이다.

 

내가 가장 크게 변하기 시작하던 시기는

 

18살 가을이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누군가가 해냈거나 증명한 일은

 

나 또한 알아낼 수 있을 것이고

 

당연히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인데

 

매번 하는 것마다 방해를 받고 억제받으며 살아온 나는

 

나를 의심하게 되어버린다.

 

문제의 본질은 내게 있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범인 찾기에서 스스로를 지목하는 것이다.

 

의심의 나침반이 어째서 본인에게 향하는가?

 

나는 항상 내 환경 탓을 하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수성가라는 말이 있기 때문이었다.

 

항상 누군가는 증명해 왔다.

 

그 길을 내가 가지 못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항상 나 자신의 탓으로 돌리며

 

스스로를 고독에 밀어 넣고 버틸 수 있는 수준까지 버텨내서야

 

나는 알게 되었다.

 

이렇게 하면 안 됐다는 것을

 

 

 

 

언제부터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 건지

 

거꾸로 거슬러가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19살에 내 탓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온전하게 나의 잘못이 100%가 아니라는 건 아니겠지만

 

아무리 노력하고 노력해도

 

내 자신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노력을 해도

 

나는 닿지 못했다.

 

당연히 나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항상 닿은 적은 없었다.

 

나의 이야기가

 

나의 시작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내 환경이 문제라는 것을 인지하는데 걸린 시간이

 

너무나도 길었다.

 

내 탓이 아닌 것을 항상 나에게 돌리고 있었으니

 

나는 내 자신마저 믿질 못하는가?

 

내가 용서를 구해야 할 존재는 나 자신뿐이다.

 

그렇기에, 항상 내가 무기력에 빠지는 경우는

 

나를 믿지 못하는 내가 반복됐을 때가 많기도 하다.

 

항상 나를 의심하는 것이 반복되다 보니

 

나는 100가지의 일을 하게 되면

 

내가 잘하는 것들만 쏙쏙 골라가거나

 

잘할 수 있어 보이거나 흥미가 있는 쪽만을 택했기에

 

내가 자신 없거나 못하는 종류는 모두 피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시작이 무서워졌고

 

내가 예전처럼 노력한다고 해서

 

최상위에 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기 마련이다.

 

진정한 나는 뭘까?

 

내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것에 있어서

 

어떻게 해야 개선할 수 있는가?

 

내 이야기를 쓰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이기에

 

주변에서 말하는 것은 그저 내 이야기의 일부만을 읽는 누군가에 불과하다.

 

나를 이해하는 것은 나 자신뿐이거나

 

나와 이야기의 개연성이 비슷한 사람

 

두 경우뿐이다.

 

 

 

 

씨발, 그래서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착한 나를 택하는 것이 제일 좋지만

 

그렇게 할 수 있는 나이도 환경도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악한 나를 택하는 선택지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게 시간을 돌리는 능력이 있다고 한들

 

나는 절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내게는 과거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고

 

이미 다 잊기로 결정한 지 오래니까.

 

나는 절대로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오히려 노력을, 단 한 번도 포기하지 않았기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는 것이다.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존재는 없다.

 

그렇다고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에게

 

이해해 달라고, 나를 봐달라고 할 필요는 없다.

 

서로 간의 사이에는 항상 벽이 있으니까.

 

그 벽을 허물지 않는 이상 쉬운 길이 아니다.

 

그 벽이 말하는 것은

 

신념, 가치관 혹은 정의라거나 무엇 일진 모른다.

 

단 한 가지 정말로 중요한 것은

 

일기를 꾸준히 적는 것처럼

 

사람과 사람사이에 존재하는 그 벽에라도 표현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사이가

 

얼마나 될까?

 

난 단지 꾸준하게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밖에 없다.

 

나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어렵다.

 

나 또한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언제나 이상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신념 속에서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나오기에

 

내가 가진 생각이 정답이라는 것을 베이스로 하되

 

누군가의 생각이 정답에 가까울 수 있다는 것 또한 고려하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한 가지를 뒤늦게 말하게 되었지만

 

내가 성취감 따위를 잘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나는 사실 더 올라갈 곳이 없다.

 

내 세상에서는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다.

 

나는 명예도, 부도, 그 어떤 것도 추구하지 않기에

 

어떠한 목표가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때까지 항상 결과로 증명해 온 나는

 

더 이상 무언가를 느낄 길이 없기에

 

이제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감정뿐만이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간직하며 절대 잊지 않는 마음은

 

' 운으로 얻은 것들로 절대 자만하지 않는다 '

 

나는 죽을 때까지 단 한순간도 잊지 않을 것이고 지금도 그렇다.

 

내게 새로운 꿈과 목표가 깃들길 기다리는 것보다

 

나를 한 번만 더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절벽 끝으로 밀어 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마음을 악하게 먹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해야만 한다.

 

더 이상 누군가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나는 따라잡는 것이 아니라

 

너를 추월하기로 했었으니까.

 

네가 꼭 그 약속 기억해 주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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