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답답하다고 느꼈다.
마음이 답답하다고 느꼈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느낌, 감정
이제는 느끼고 알 수 있다는 건
내게 분명히 변화가 왔다는 거겠지.
나도 알고 있을 정도로 명확히 알고 있어.
세상은 잔혹하고 역설적이다.
내가 도망가는 순간부터
내가 나를 마주 보게 되는 시간까지
깨닫게 되는 시간은 다 다르지만
결국, 자기 자신을 마주보게 된다는 것은
어떠한 형태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내게 하는 고백으로 존재한다.
죽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것은
너무나 살고 싶은데, 나를 이곳에서 꺼내달란 말이고
스스로의 정신이 무너져간다는 것은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자신을 갈아낸 것이다.
어째서일까.
시간은 절대적인 수치인데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시간을 매우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지만
또 누군가는 시간이 아니면 극복하기 어려운 일이 있다.
항상 언제 까지나라고 하면서, 영원을 논하면서까지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을 믿는다고 속이면서까지도
스스로를 마주 보고 진심으로 고백할 수 있어?
나는 나 자신을 믿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스스로에게 고백할 수 있어?
누구도 쉽게 할 수 없는 고백이다.
결국 자기 자신과 시간을 바쳐서
스스로를 만들어내는 것에 불과할 뿐인데.
아, 나는 이런 거창하거나 의미 있는 삶을 논하고 싶었던 것이 아닌데도
어째서, 어째서?
내가 나아가기 위해서는 내 주변부터 바꿔야만 할까?
내 자신을 왜 바꿔야만 할까?
나는 그대로의 내가 좋은 걸 알고 있는데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현재에 계속 안주하게 된다고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나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누구보다 외로워 하지만 혼자 있는 걸 잘하는
누구보다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하고 싶지만
좋아하는 마음을 느낄 수 없는
누구보다 헌신적으로 살고 싶지만
이제 헌신할 만큼의 능력 따위가 없는
지금 이 자리의 내가 느끼는 마음을 그대로 전할 수 있는
그 누군가가 나타나길 바라는 그런 내가
나의 감정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면
모든 고민도 걱정도 없을 텐데
나는 언제까지나 이러겠지.
항상 언제까지나 기다릴 수 있다는 말이나 하면서
항상 누군가를 돕는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속이면서
항상 그런 무언가가 나타나면 다시 여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되뇌면서
그저 항상
기다림의 외로움, 사랑의 결심, 시간의 무게 따위를 논하면서
감정과 신념을 되새김질하며
나 자신을 갈고닦아 같이 나란히 걸을 수 있는 준비하려는 강한 의지를
내가 믿는 내 자신의 영원을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다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
버텨왔을 뿐이네라고 스스로에게 말하곤 한다.
나의 외로움은 너무나도 깊기에
내가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은
그동안 누구도 닿지 못했던 나의 깊음에 닿은
그런 사람.
"이 사람이라면 나를 배신하지도, 나를 알아줄 수 있겠다."고
확신하게 만든 사람.
아, 어째서 나는 이렇게 힘들어야만 할까.
나는 배팅했을 뿐이다.
나를 마주 보는 것이
나뿐만이 아니라, 누군가도 가능하다는 것에
그래서 나는 애매한 것이 싫었다.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어떤 마음인지 알 수 없는 그 모호함은
내게 희망이 되어 나아가게 해 주면서
그와 동시에, 내게 상처가 된다.
하지만, 나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다.
내 마음이 가짜도 거짓말도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그렇기에 느끼는 나의 답답한 감정과 느낌이 존재하니까.
결국 내가 해야만 하는 것은
내가 더 망가지지 않도록
약속을 지키고
영원을 맹세할 수 있는
그런 나를 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다.
꾸준히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나 자신과 마주하는 것이
어렵지 않고 쉽게 할 수 있는 시점부터
나라는 사람이 나라는 것을 지키기 위함이다.
약속을 지킨다는 그 마음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니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고개를 들어서 다시 눈을 마주쳐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