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하기를 일기장으로 표현하지만
내가 일기를 적을 때는 뚜렷한 시점이나 시간을 표현하지 않는다.
굳이 카테고리의 연도를 적어놓은 것과 같은 맥락이지만
내가 일기를 쓰는 시점과 생각하는 시점
해당 이야기의 시간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생각하고 있는 이야기, 감정을 과거에 적거나 표현했을 수도 있고
저 먼 과거의 일을 현재에 적을 수도 있다.
사실 이런 구조로 진행할 수 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는
내 일기장이라고 표현했지만 결정적으로
나의 정신 문제 해결이나 트라우마에 집중된 이야기들이
대다수 포진되어있기 때문인데
가끔은 이미 연이 끊긴 누군가와의 이야기를 적기도 한다.
나는 내가 스스로 연을 끊었다라고 표현할 때
나쁘게 헤어진 인연은 없다.
하지만 연을 끊어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으니
그런 판단과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지금에 와서도 생각에 변함은 없다.
나는 특이하게도 기억력 부분에서 강점을 보이는데
내가 의식했을 때 기억하고 싶은 기억은 남기고
지우고 싶은 기억은 지울 수 있다.
물론 어느 쪽이던 장점과 단점은 따로 있다.
하지만 내가 일부러 지우지 않는 기억들이 존재한다고 한다면
그것도, 좋지 않은 기억을 일부러 지우지 않는다면
특별한 이유가 있다.
때는 나의 말을 처음으로 들어주기 시작한 사람이 있었던 시기였다.
지금도 겉으로는 조금 냉정하게 행동하는 편이지만
그 때는 조금이 아닌 아예 누군가와도 대화를 하지 않던 시절이기에
그 사람은 유독 기억을 하고 있다.
어쩌다보니 최근에 그 사람의 지인과 연락이 닿았기에
문득 생각난 기억인데
나와는 정반대의 상황에 있던 것 같은 사람이었다.
항상 밝고 착하게 말해주던 그 사람과는 반대로
나는 항상 차갑게 대하거나 대답을 하지 않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개월 동안이나 나에게 꾸준히 말을 걸어주었는데
내가 그때 물어봤던 질문이 하나 있었다.
왜 이렇게 내게 말을 거냐고 말했다.
그 사람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언젠가는 대답해주지 않겠냐고
사실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지만
나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하다보니
나 또한 똑같은 대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몰랐기에
나와 가까워지려 하거나 친해지려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당시에는 살아가는 것조차 바빠서 무언가에 여유를 갖는 것이 힘들었다.
그 사람과 처음 알았을 때
그 사람은 내게 이름을 물어봤다.
그게 인상 깊어서 나는 누군가를 알게 되었거나
더욱더 알아가고 싶을 때 이름을 물어보곤 한다.
지금의 성격과 대화 방식과는 다르게
그 당시에는 무슨 말을 하거나 대답을 해야할지 몰라서
물론 평소처럼 말할 수도 있었겠지만
내게 잘해주는 사람에게 냉정하게 대답하고 싶진 않았기에 고민했다.
하지만 내게 왜 이렇게 냉정하게 말하냐고 물어봤을 때는
사실 그때까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냉정한 말투나 성격을 쓰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그때부터 고쳐가기 시작했다.
조금씩 밝은 모습으로 변하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그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과거나 트라우마와 마주할 수 밖에 없었기에
우울하거나 외로운 감정을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감정과 피하지 말고 본인에게 말해도 된다고 했다.
그래도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밝고 좋은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에게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는 건 싫었다.
굳이 들어서 좋을 거 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살려고 열심히 무언가를 하면서도
동시에는 너무나 살기 싫어서 그만하고 싶다고 매번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나 생각 따위를 감히 누군가에게 말하는 건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굳이 신체적으로 피해를 주는 것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마음도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말을 하지 않고 쭉 지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고슴도치와도 같았기에
결국 한 번 싸우게 되거나 감정적인 문제가 발생하면
무슨식으로든 해결을 해야만 했었다.
그것이 어떠한 결과를 불러오는지도 모른채
그 사람은 한국을 떠나야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거냐고 물었다.
별거 아닌 말과 질문일 수도 있지만
내게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기에
왜 떠나야만 하냐고 계속 물어봤지만
그 대답은 내가 용납도 이해도 되지 않는 말이었다.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도 없었기에
너무 답답해서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명백하게 앎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장 하면 안 되는 폭력을 저질렀다.
그 사람에게 내가 이때까지 얼마나 힘들었고
나의 이야기를 줄곧 계속 들어주길 바랬다고 말했다.
물론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알지만
나의 불행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불행을 말하는 것보다 불행한 것은 없다.
밝고 좋은 환경에서 자라온 그 사람에게
내 불행을 논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심한 폭력이었다고 생각한다.
나를 이해하라고 강제로 시킨 것과 뭐가 다를까 싶지만
나는 나를 솔직하게 봐준 사람에게
처음으로 화를 내면서 계속해서 내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지만 그 사람은 침묵을 유지했다.
내 화도 불행도 이야기도 계속 들어주고 있었다.
그걸 눈치챈 것은 말을 하다가 지쳤을 때였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다.
사과할 시점도 내가 말하기 전으로 돌아가기에도
무얼 하던 전과 같을 수 없다는 걸 느꼈다.
나같지 않은 나도 견디기 어렵지만
우리같지 않은 우리의 사이도
그런 사이가 변화하는 것을 느끼고 있던 나는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깨닫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불행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듣는 사람도 준비가 되어야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더 한심한 건
그 불행의 크기를 비교하는 짓이라는 걸 알게 됐다.
내가 행하고 있던 것들은 내 스스로의 논리와 반대가 되고 있었다.
그 이후로는 쉽게 불행을 이야기하지도
누군가와 자신을 비교하지도 않게됐다.
물론 100%라는 것은 없기에 매번 그렇게 마인드셋을 할 수는 없지만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면 안 된다고 생각하기에
하지만 또 그렇게 생각은 한다.
말한 타이밍과 방식이 잘못 됐을 뿐이지
결국 서로가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행복도 불행도 그런 모든 순간도
서로가 알고 있어야
불행을 피하면서 행복을 추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그런 방향이 보이지 않나 싶다.
물론 그 사람과 연락은 가능하지만
지금와서 사과를 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유일하다고 할 수 있을만큼
아무 탈도 없이 좋게 헤어진 인연을
굳이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말을 걸고 싶진 않다.
끝난 이야기는 끝난 거라고 생각한다.
나쁘게 헤어진 것도 아니기에 후회하진 않는다.
항상 끝난 이야기가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는
그런 이야기는 망하기 마련이니까.
좋게 헤어지든 나쁘게 헤어지든
단 몇 명을 제외하고 새로 이야기를 쓰는
차기작이 없는 이유는 지금까지 말한 것과 같은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