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제자리를 맴돌고 있을 때
나는 말한다.
좋아하는 것이라도 찾아보는 건 어때?라고
하지만 내 자신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였을 때
나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하게 한 자리에 있었다.
목적지도 모른채 항해하는 내 입장에선
항상 그 자리에 북극성처럼 있기 마련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보이지 않거나
사라지게 된다면 나의 항해 일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어디로 가야만 하는 걸까라고 되뇌이고만 있었다.
또 다시 새로운 별을 찾아야만 하는 걸까?
그냥 가던 길로 쭉 가는 것이 좋을까
결과는 아무도 모르기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매번 노력해도 막히는 벽
환경적인 요소로 인해서 시도조차 하지 못하는 삶
내 열정과 꿈마저 짖밟히는 세상 속에서
나는 무엇이 정답으로 이끌어주는지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매번 행하고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꿈도 목표도 아닌
그저 의미도 찾을 수 없는 나의 신념이었다.
어째서 나의 신념을 선택한 건지는 알 수 없다.
내가 당했을 때 너무나 싫었던 것들이 모여서 신념이 되었을까?
나는 언제부턴가 정의를 소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겐 정의를 논할 자격도
그럴 열정도 노력도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는
이미 정의보다는 내 신념적인 행동을 따라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누군가를 위한 선의의 행동
즉, 희생적인 행동을 주로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내가 희생하려는 마음은 나의 진정한 선을 표하는 관대함에서 오는가?
나의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려는 죄책감으로부터 오는가?
스스로에게 물어봤을 때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둘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느 방향이던 간에
나는 선을 행하는 것이 좋다.
누군가가 내게 물러터졌다고 말한다고 해도
나는 그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며
누군가를 돕는다는 행위가 좋다.
그것이 절대로 변하지 않는 나의 선택이다.
물론 이 세상은 선이 대우받을 수도 없는 세상이고
악이 더 잘되는 세상이지만
누가 대우 받으려고 선을 행하겠는가?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그건 진정한 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모두,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는 세상이 올 것이라고 믿으며
나 또한 그 세상 속에서 누군가를 돕는 것이
나의 진정한 선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뭐, 여유가 많다거나 한심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행동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선을 추구하고 행동했기에
현재의 내게 좋은 기억, 좋은 사람들이 있는 게 아닐까 싶다.
만약 내가 트라우마 속에 쭉 갇혀 있는채로
선택을 하지 못했다면
나는 이 자리에 없었을테니까.
나는 나에게 악한 짓을 한 사람들에게
복수를 해야한다는 마음을 잊은지 오래다.
어릴 때부터는 아니다.
어느새부턴가 누군가의 마음을 듣고
나의 마음을 들려주고
많고 많은 이야기가 엮여 하나의 새로운 이야기가 되듯이
깊은 마음이 새겨졌기에
나는 외부에 있는 악을 몰아내기 보다는
내 내면에 있는 악을 막는 것을 선택했다.
당연하게도 나는 내가 나쁘다고 생각하니까.
어떤 것이 나쁜 것인지 알아야만
정확히 정답에 가까운 선을 행할 수 있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도 내 마음이 완전히 치유될 수는 없다고 본다.
어느정도 혹은 절반까지 올 수 있는 방법은 알지만서도
그건 아직 내게 선택권이 없다.
그런 기회가 올 때까지 한결같은 마음으로
줄곧 해온 것과 같이 행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마음이 무너질 때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