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와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말해줄 때는
태도가 명확하게 다르다.
그 누구라도 말이다.
물론 그러지 않은 경우도 있겠지만야
나같은 경우는 나만의 철학이 섞이기 마련인데.
나의 철학은 낙관적 허무주의에 가깝지만
나만의 신념과 섞여 재해석을 한다면
「 세상은 본질적으로 무의미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안에서 내가 살아갈 의미를 창조할 수 있다는 믿음.
허무를 받아들이되, 그 허무 속에서도 스스로 이유를 만들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
이런 방향성에 가깝다.
사실 그렇지 않는다면 꿈도 목표도 없는 이 세상 속에서
살아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은가?
나는 기본적으로 고점이 높다고 표현할 수가 있다.
나의 능력이나 지수를 표현한 것이 아니고
심리적, 정신적인 깊이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무언가와 기분과 같은 요소들이다.
그렇기에 살아가면서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남들보다 매우 적은 편인데.
이런 부분에 내 철학을 적용시킨다면
결과값은 "그렇다면 좋다고 느낀다는 것은 정말 진심으로 좋아하는 거기에
그것에 집중하는 것은 틀리지 않았다."로 도출된다.
그렇다면 내가 진심으로 좋다고 느낀 것이 있었는가?를 떠올리면
있었고 지금도 있다.
지금도 스쳐 지나가듯이 듣고 있는 노래부터
소중한 어떤 기억들까지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꿈과 좋아하는 것만을 쫓기에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
그건 내가 외면하고 있었을 뿐이지
줄곧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내가 하고 싶다고 생각하거나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과 과정들이었다.
현실적인 무게는 무시할 수 없다.
나는 돈과 명예, 이런 키워드와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은
내가 어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어린 상태로 남아있고 싶었고
더 이상 앞을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어렸기에 항상 최고가 되고 싶었다.
어떤 분야를 하더라도 자신이 있었고
노력하면 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세상에 정점은 하나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이 세상은 내게 말했다.
최고라는 단어를 포기하라고.
사실 나도 알고는 있지만 줄곧 고개를 돌리고 외면했다.
나는 최고도 될 수 없고, 재능 또한 없는데
그만큼의 노력도 하지 않는다.
어떻게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비관적인 마인드로 살아가고 있을 쯤
문득 생각이 들었다.
딱히 최고가 되지 못 했을 뿐이지
사실 모두 최상위권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겐 노력이라는 재능이 존재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 노력이 발현되는 부분은 무엇일까?
나는 어떤 것을 하고 싶다고 마음 먹었을 때
항상 목표가 정해져있지 않았다.
대신 하나의 공통점은 같았다.
어제의 나보다 잘해지기.
이것은 자명하게도 같았다.
물론 재능은 없기에 매번 최고는 될 수 없었지만
어떠한 장소와 방식에 구애받지 않고
항상 최상위권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재능은 무엇을 말하는 걸까?
그런 생각은 그만두기로 했다.
재능이 있던 없던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싶었다.
현실과 타협하기 시작하기로 했다.
그렇게 약속했다.
그렇다, 내가 인정만 하고 받아들인다면
나는 무엇을 하더라도 높이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내 스스로가 그걸 쉽게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렇기에 내 스스로의 희생적 정신을 이용해야만 했는데.
이중사고에 가깝지만, 그렇게 하는 방식이
스스로 세뇌하기에 편했다.
속이지도 않으면서, 나에게도 좋은 방향성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내가 인정하는 나의 재능은 무엇인가?
굳이 골라보자면 기억력과 감각이다.
기억력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지만
감각은 내게 정말 중요한 요소였다.
예로 들어, 새로운 사람을 알았다고 생각해 보자.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겠는가?
그런 곳에서 감각은 매우 중요하게 적용됐다.
어떤 사람인지, 혹은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일 수 있을 지 따위에서는
감각이란 재능은 유용하게 쓰였다.
물론 페르소나적 행동이기 때문에
내가 진심으로 행동할 때는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이 감각은 뭐랄까 설명하기 어렵다 신내림같은 것도 아니지만
쉽게 말해서 스파이더맨의 그런 느낌아닐까?
살짝 간단하게 말하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보는 능력과도 같다.
사실 내가 무언가에 욕심이 생긴다고 하면
이런 것들을 활용할 수 있다.
그런 기회가 오지 않을 뿐이다.
물론 아예 안 온 것은 아니지만
올 때마다 확실하게 나의 능력을 몇 배로 이끌어준다.
평소에는 냉동 보관되어 있다가
활약할 순간이 오면 해동되는 느낌이다.
보통 사람 같았으면 매우 좋은 능력이지만
나는 왠지 모르게 내가 거부감이 느끼는 곳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
특히 돈과 엮여 있다면 말이다.
문득, 내가 조금 더 어릴 때의 일이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때 였는데.
본인은 음악을 하고 싶은데 집에서 반대를 한다고 한다.
사실 이런 경우 말고도 되게 많았다.
내게 상담하는 경우는 너무나 많았지만
그때마다 나의 대답은 같았다.
정말 하고 싶다면 고민할 필요 없잖아?
나중에 못해서 후회하는 것보다
지금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하라고.
이것은 내게 하는 말과 같았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지만 한 번도 듣지 못했었다.
현재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있는가?
혹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은가? 되묻는다면
이제는 현실적인 타협을 해야만 하는 시기에 도달했기에
성공하는 경험, 실패하는 경험 따위를 논할 시기는 지났다.
나는 물질적인 가치에 감정을 배제해야만 한다.
공교롭게도 나의 문제점 대부분은
물질적인 가치로 거의 해결할 수 있다.
약 95% 정도에 수렴할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나의 마음을 숨길 필요가 있다.
아이러니한 경우라고 생각한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서는 좋아하는 마음을 숨겨야만 한다는 것이
과연 맞는가? 검증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인형만 끌어안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어쩔 수 없다가 맞지 않을까?
현실과 타협하기 위해선 어른이 되어야만 하니까
어린 나의 꿈은 더 이상 쳐다보지 않아야한다.
누군가의 발을 붙잡을 수만은 없으니까.
엇갈렸던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생각을 하면서 떠올리다 보면
또 다시 기억이 흐릿해진다.
좋아하는 것만 생각해도 시간이 부족한데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