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나의 이야기

나를 이해하려는 네게 나를 소개하는 안내서

2025

히치하이킹

vnfma0225 2025. 8. 11. 00:00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안개가 자욱이 낀 어느 날

 

한 벤치에 앉아서 앞을 바라보기만 하고 있다.

 

비가 억세게 오는데도 불구하고

 

신경 따위는 쓰지 않는다는 듯이

 

그저 그 자리에 있었다.

 

 

 

비가 오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비를 맞는 것은 꽤 재미있는 일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미를 위해 맞고 있지는 않았다.

 

이 앞으로 조금의 걸음만 옮겨도

 

큰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러나,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는다.

 

안개 덕분에 방향감각 또한 상실했기에

 

일어나서 앞을 갈 용기는 없었다.

 

호수에 빠지면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황이 될 때까지 왜 앉아만 있었냐고 묻는다.

 

집으로, 혹은 어딘가로 돌아가야 하지 않냐고 묻는다.

 

비도 안개도

 

내가 본 일기 예보 따위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무슨 대답을 원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렇게 될 때까지 무엇을 했냐고 물어본다면

 

무엇을 답해야 할지

 

그저 핑계로 보이지는 않을까

 

무언가를 하다가 실패했을 때

 

이 꿈에 다가가기 위해서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 과정 또한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설명하는 그 모습이 보였을까?

 

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슨 대답을 해도 온전한 자신만의 탓이 아닌 것을 알기에

 

남이나 주변의 탓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기에

 

그저 침묵만을 지키고 있었다.

 

그렇게 그냥 앉아있었다.

 

 

 

살짝만 생각하면 쉬운 건데 말이다.

 

여기에 올 때만 해도

 

아니, 이곳에 앉을 때만 해도

 

아니, 지금 물어보기 전에도

 

그전에는 물어보는 사람이 없다.

 

왜 이런 상황까지 왔는지 물어보는 사람은 없다.

 

사실 물어보지 않는다.

 

이렇게 되지 않는다면 관심조차 없었을까?

 

이제 와서 물어보는 것이 무엇을 바꿀 수 있는 것인지

 

어떤 것에 의미가 남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다.

 

나는 정말 모르겠다.

 

 

 

이곳에 앉아있게 된 시간은 엄청 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이 의자에서 얼마나 긴 시간을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저 주저앉지 않기 위해서

 

앉아있었을 뿐이다.

 

그런 건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다.

 

그 누구도 비를 맞는 순간까지 와도

 

우산조차 씌워주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긴 시간 동안 앉아있었던 나도

 

누군가에게도 말하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불행을 말한다고 한들 들어주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그것은 그저 바뀌지 않는 과거를 읊을 뿐이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더 이상 미래나 꿈, 목표 따위가 없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만 하는가?를 되물었을 때

 

아무런 대답을 할 수가 없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

 

내가 탓하고 싶었던 것은 너무나 많지만

 

탓한다고 바뀔 수 있는 것도

 

내 의견을 들어줄 장소도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항상 새로운 방향을 되잡고

 

또 무언가를 시도하곤 했다.

 

누군가 무시를 하고 나의 노력을 밟는다 해도

 

항상 시도하고 증명했다.

 

그게 나의 마지막 대답이었다.

 

"왜 살아야 하는가?"

 

누군가 내게 이렇게 묻는다면 뭐라고 해야 할까?

 

솔직히 지금은 답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항상 무언가를 위해서

 

그 무언가에 닿기 위해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줄곧 노력한다고 할 만큼 하며 살아왔는데.

 

모든 시간과 노력이 부정당하고 이곳에 앉아있는 내가

 

대답할 수 없었다.

 

 

 

죽는 것보다 괴롭다고 생각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삶은

 

너무나 조용하고 지루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을 떠나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가난, 폭력 같은 것보다

 

아무것도 하고 싶은 것이 없는 처음 맞는 나의 상황이

 

너무나 괴로웠다.

 

무얼 해야 할지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그저 고개를 숙이게 됐다.

 

얼굴에 흐르는 것이

 

비인지 나의 눈물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계속 울고 괴로워하다 보니

 

아무런 감정조차 남지 않았다.

 

내가 소위 말하는 소시오패스가 된 것일까?

 

장난식으로 싸패니 소패니 논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그런 존재 따위가 되고 싶지 않았다.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면

 

일어나서 호수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 뭐가 나쁜지 되물었다.

 

웃긴 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물어봐주는 사람은 없지만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나

 

죽어도 되지 않을까란 질문에는

 

항상 붙잡으려는 대답이 돌아온다.

 

그냥 웃기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정상의 대답이겠지만

 

괴리감을 확실하게 느꼈다.

 

 

 

어떤 무언가의 진지한 대화를 나눌 때보다

 

죽고 싶다는 말에만 진지하게 대답해 주는 사람들한테

 

이상하다는 느낌을 들었다.

 

그 괴리감의 정체를 알았을 때는

 

내가 원하는 나라는 것이 문제라는 걸 깨달았다.

 

목표도 꿈도 없는 내게 남은 것은 신념과 선뿐이었는데.

 

착한 사람이 되고 싶은 걸까?

 

혹은, 누군가로부터 보이는 나의 이미지가 착했으면 좋았을까?

 

무엇을 고르던 생각한 순간부터 나는 착함과 거리가 멀었다고 생각했다.

 

그건, 계산을 했다는 거니까.

 

그때부터는 착한 사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게 됐다.

 

나 또한 다를 것이 없다고 느꼈다.

 

모든 걸 포기하고 놓으려는 순간

 

마지막으로 누군가와라도 대화를 하고 싶어졌다.

 

사람은 살면서 세 번의 기회가 온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나는 인연 또한 그렇게 생각한다.

 

똑같이 세명의 사람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말을 처음으로 들어주려고 한 사람이 그렇다.

 

나의 속마음 전부를 말하진 못하여도

 

1할조차 말할 수 있다는 것에 고마웠다.

 

그렇게 내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줬다.

 

그렇게 울음이 그쳤을 때쯤 나는 고개를 들 수 있었다.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문득 잊고 있던 것들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잊으려고 노력한 나의 과거도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도

 

아직까지 변함없이 비가 내리고 있는 이 상황도

 

전부 보이게 됐다.

 

 

무엇을 해야 나를 나대로 봐줄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생각을 많이 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 얻은 상처는 사람으로 회복한다 했는가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누군가 내게 왔다.

 

누가 먼저 왔는지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그냥 어느샌가 옆에 있었다.

 

심리적으로 많이 안심이 됐었다.

 

나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나는 그렇게 큰 것을 바라지도 않았으니까.

 

딱히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는 더 많은 나의 마음을 말하게 됐다.

 

그렇다고 한들 쉽게 마음이 변하지는 않았다.

 

내겐 여전히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해답을 알 수 있을지 의문이 자주 들었다.

 

지금도 뭐 다를 거 없다고 생각하지만

 

속마음을 한 번도 말하지 못한 내게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다.

 

 

 

죽고 싶다는 말을 하지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무렵

 

나는 무언가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비가 점점 그치려고 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숨을 쉬는 것도 힘들어하는 내겐

 

큰 문제가 남아있었다.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분명히 할 수 있는 것들은 많고

 

내가 하고 싶었던 것들을 다시 시작해도 좋다.

 

하지만 새로운 상황에 마주한 것이기에

 

그저 꿈을 논할 수는 없었다.

 

 

문득 나의 손을 잡아준 사람이 생길 시간에

 

나 또한 새롭게 하고 싶은 것이 생기면서

 

잊고 있었던 한두 가지의 꿈이 떠올랐다.

 

어째서인지 생각나지 않았던 것들이다.

 

아니, 한 편으로는 불가능하다 생각하고 잊어버렸을지도 모른다.

 

나의 손을 잡고 일으켜준 사람 덕에 다시 떠올랐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우연한 일이지만

 

어쩌면 이런 미래를 기대하면서 살아온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했다.

 

너무 불행한 일들이 연속으로 펼쳐지면

 

항상 전생에 무슨 죄라도 지은 것이 아닐까? 같은 말을 나누기라도 하듯이

 

그렇지 않아라고 대답하듯이

 

우연하게 좋은 사람과 상황이 나타난다.

 

나는 내 기회를 놓쳤지만

 

내 사람들은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만이 내 새로운 꿈과 목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나를 위해서인가, 그 사람들을 위함인가?

 

그런 것 따위는 생각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뭐가 됐든 도움받은 내가

 

그 사람들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것은

 

나다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만이 왜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에서

 

어떻게 살아야 좋은 걸까라는 대답으로

 

바꿀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아직 나의 속마음을 말한다거나

 

나의 마음, 꿈을 기억하는 사람은 없고

 

사과나 용서를 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변하고 싶다면 나와 나의 주변부터 바꿔야만 한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나는 한 번 더 마음을 다잡아야만 한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해야한다.

 

그렇게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없으니까.

 

하기 싫은 것도 해야만 한다.

 

꿈을 위해서라면

'2025'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부시게 웃어줘  (0) 2025.08.23
고양이 심리  (0) 2025.08.14
어둡게 물들이다  (0) 2025.07.27
한 순간의 반짝임  (0) 2025.07.21
새롭게 이야기를 적는다면  (0) 2025.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