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살고 싶지 않다는 마음을 새겨왔는지 모르겠다.
뭐 사실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 정도로
그런 시간이 더 많았지만
그런 생각 따위를 하지 않을 정도로
재밌던 시간이 분명히 존재하는 것은 자명했다.
그 정도로 내가 재밌다거나 기쁨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분야는
꽤 많지 않으며, 그런 순간이 온다고 해도
정작 생각으로만 남는 것이 한계인 경우가 대다수이다.
나는 그런 내가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감정 따위를 못 느끼는 게 아닐까 그저 의심하는 수준으로
머물게 되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으면서
언젠가는 알 수 있지 않을까
알 수 있는 날이,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기도하고 있었다.
항상 불행한 것이 나의 당연한 기본 값인 것처럼
조금이라도 괜찮은 날에는
항상 하던 습관 중 하나인
하늘 올려보기를 하곤 했는데
그럴 때만큼은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문득 바다를 보러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내가 정말 보고 싶어 하던 것이 있었다는 것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계기가 됐다.
나는 항상 오로라를 보는 것을 꿈꿔왔다.
단순하게 천문학이니 동화 감성이니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
어째서 나는 오로라를 보고 싶어 했을까?
그저 동경과 환상에 불과했을까?
처음 사진으로 봤을 때의 설렘은
아직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뭐, 그렇게 하여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것 또한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살고 싶다는 마음을 잃은 이상
꿈을 잃은 내게 있어서
남은 것은 신념 하나였기에
하지만 내 신념과는 거리가 멀은 행동만이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남아있었다.
내가 논하는 천문학은 단순한 과학만을 논하는 주제가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과 감정, 기억까지를 내포하는
누군가의 우주를 탐험하는 이야기꾼과 비슷한 결이었다.
그렇기에 누군가의 가장 빛나는 부분 중 하나를 보려고 한다면
그것은 오로라와 가깝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꿈꿔왔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면 나의 오로라는 어떤 장면을 보여주게 될까?
나의 이야기 중 가장 빛나는 파트는 어디고 무엇일까?
스스로 떠올려봤을 때는 어려우며 생각나지 않는다.
스스로 시계를 돌려가며 찾아보려 하면
딱 하고 멈추는 순간부터 뒤로 돌려볼 수 없다.
내가 스스로 잊은 기억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불행한 것이 당연한 일로 남게 되면
사는 것 자체가 재미없기 때문이다.
그저 삶이 지루하다.
그렇기에 앞을 바라보며 간 적이 없었다.
항상 고소공포증이 걸린 나 자신처럼
아래를 보면서 걸어가고 있었다.
이젠 더 이상 올라가는 것이 두렵다.
이 앞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 완전히 무너졌을 때
새로운 희망을 보며 마지막으로 꿈꿔왔던 것 중 하나를 실천하기로 결심했다.
그제야 내가 무엇을 해야만 이제라도 나아갈 수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이 순간만은 당연하지 않았다.
내가 진심으로 죽을 수 있다는 순간에서
매우 슬퍼하는 것은 이때까지의 나와 너무도 달랐다.
내게는 그런 것이 당연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그랬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그렇기에 나는 그 순간부터
항상 남들에게도 같은 말을 해주고 싶었다.
내게 그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었기에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해주며
그저 이야기를 줄곧 이어가고 싶었다.
누군가가 내게 당연하게 생각해도 되는 부분을 알려준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았기에
계속해서 내가 나 자신에게 꾸준히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말이다.
하지만 문득 새로 알게 된 사람도
새로운 이야기도 많게 됐는데.
나 자신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나 자신이 변해가는 동시에
주변도 변화하는 것이 느껴지고 있었다.
그렇게 무난하게 흘러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나는 더 이상 나의 미래 따위나
내가 뭘 하고 싶은지를 생각해 본 적이 21살 이후로 없었는데
아니, 그전에도 사실 꿈 말고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살고 있었던 내게
당연하듯이 말해준 그 한 문장이
너무 인상 깊었다.
평생 잊지 못할 정도로
내게는 크게 와닿았다.
살면서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감정과 마주했다.
나의 현실을 더
나의 미래를 조금 더
아니, 나의 미래를 당연하게 생각해 주는 너의 그 말이
나와 그런 약속을 할 수 있을 만큼의 그 말이
가볍게 아무 의미 없이 말했다고 하더라도
전혀 내게는 가볍지 않고
내 온몸과 시간을 관통하는 말이었었다.
어째서 나는 미래를 더 이상 그리지 않게 되었을까?
그렇게 나는 나의 마음과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미래라는 것이
무엇이 당연한 것인지
뭐가 당연하지 않은 것인지
전부 구별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을 구원이라는 단어 외에는 표현할 단어가 없다고 생각할 정도로
내게 당연한 미래를 선물해 주어서 고맙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도 누군가에겐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런 말을 해준 네게도 내가 받은 만큼의 무언가를
전달해주고 싶다.
아무도 내 말을 들어주지도
내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도 않는 그런 세상만 마주 보다가
나의 세상에 불이 켜진 것처럼
나는 진실과 마주칠 수 있었다.
가볍게 농담으로 흘린 것 같은 그런 말 하나하나까지도
어쩌면 이 순간이 가짜라고 하더라도
내게는 정말 크게 와닿았다.
하지만 결정은 이미 내렸다.
나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기에
고쳐낼 수 있다고 믿지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에게 유일하게 말해준 사람, 그런 말도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선택하는 것은 나.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일어날 수 있을까?
그것이 당연할 정도로 해봐야만 한다.
언제가 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