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공간은 나를 담고 있다.
내가 보여주는 기억과 이야기가 담긴 도서관은
한 순간도 변함없이
양면적이고 입체적이다.
그에 대한 설명은 이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양면적이라함은 무엇을 나타내는 말일까?
나의 본질? 성격? 모든 걸 내재하는 바탕 속에서
나는 입체적이다라는 말을 이해해야만 했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적 따위 없다.
사실 살아가면서 되게 많은 양면적인 판단과 생각을 했다고 생각한다.
죽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그 누구보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것.
이루고 싶은 것은 많지만 사실은 해내온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너무 높은 곳을 바라만 보며 올라가기에
밑을 내려다 보지 않기에
누군가가 나의 손을 짓밟아, 떨어지는 순간에도
나 자신과 그 순간 환경의 탓을 하고 있음이
그것을 증명해준다고 생각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내겐 양면적인 부분이 매우 많다.
일단, 장점과 단점의 간극 차이이다.
나는 살아오면서 나의 장점과 단점이 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을 정도로
많은 고뇌의 시간과 스스로의 통찰을 해냈지만
그만큼 예민하고 사람들에게 데인 부분도 많기에
이기적으로 행동할 때도 많고
내 마음가는대로 행동할 때도 많기에
사실 나는 내가 비정상에 속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비정상에 속한다고 한들
그 사이 속에서도 급을 나누는 것이 인간이라
조금씩 더 파고들어 불행마저도 저울질 하는 것이
너무나 한심하다고 생각이 들어
나는 언제부턴가 입을 닫았다.
사실 내가 불행한 인생을 살아왔지만
현재에 와서는 그렇게 불만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물론 현재의 상황이나 환경 또한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따로 있는데.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나는 운이 좋다.
너무나 어두운 곳에 있었기에 진정으로 어둠과 마주봤고
그렇기에 진정한 빛과 선을 알아챌 수 있었고
가진 것이 없어도 불만을 갖지 않았고
오히려 무언가를 가지려고 하기 보다는
누군가에게 나누려고 했었고
정의를 논하고 싶었다.
즉, 내게 욕심과 감정이 없는 것은 오히려 천운으로 작동될 수 있다.
나의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운이 좋은 것이다.
자본주의 시대 속에서
물론 살아가기 힘든 성격이겠지만
행복의 역치가 너무나 커서 만족과 감동을 느낄 수 없겠지만
가진 것이 없어도 하고 싶은 것만 할 수 있다면
딱히 결핍 자체를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게 물질이든, 감정이든, 그 무언가여도
나는 고독과 마주볼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나의 단점마저 장점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만 한다.
항상 냉정하게 있을 수 있다면 가장 좋은 곳이 어딘지 누구나 알고 있기에
꾸준히 실행할려고 한다.
물론 아무것도 느끼지 못 한다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내가 느끼는 범위가 너무 위에 있을 뿐이다.
내게 감동과 느낌을 주는 무언가가
그렇게 쉽게 세상에 나타나지 않으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생각해보면 좋아하는 무언가에 빠졌을 때
나는 끝까지 그것만을 고수하려는 태도를 유지한다.
그것이 뭐든간에 말이다.
나는 최선을 다함과 동시에 노력하는 것이
정말로 나의 본질적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즉 장점과 단점이 적재적소로 사용될 수 있다면
그것을 조절하고 통제하는 것이 진짜 본래의 내 재능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장 큰 문제점이 있다고 한다면
좋아하는 것이 한 순간 사라지거나
더 이상 없는 순간에는
무너져버린다는 것이다.
내가 살면서 좋아한 무언가가 나타난 일은 별로되지 않는다.
아마 어릴 때, 13~14살쯤
그리고, 19살 이후로 두세번 정도다.
물론 많다고 하면 많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완벽주의를 분명히 추구하지만
그럴 수 있는 재능 따위는 없기에
끝없는 노력을 많이 하니
사용하는 시간 자체가 길다.
뭐 지금은 어떻게든 좋아하는 것이 하나라도 있기에 버틸 수 있지만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 것이고
그저 단순한 꿈일텐데
이루기 어려운 꿈만 있는 것도 문제긴 하다.
세상은 내게 허락해줄 의향이 없다.
또 다시 주저앉을 것인가?
이번에는 다르다며 일어날 수 있을까?
나를 일으켜줄 사람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데
내가 스스로 할 수 있을까?
이제는 더 이상 내게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
과거에 말해줬던 기억만을 품안에 품고
그 기대에 부응하며 전진하는 것이지만
소중한 사람들이
내가 완전히 달릴 수 있는 상황에 없다면
대체 무슨 의미가 남는걸까
나는 사람을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일텐데
어째서 사람들에게
모르겠다.
나의 마음속에 켜져있는 불은
깜박깜박하고 있는 상황에
교체해줄 무언가나 사람이 없다면
나는 또 다시 무너져 버릴 수도 있다.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기억만을 붙잡고
언제까지 앞으로 가야만
내가 원하는 단 하나라도 붙잡을 수 있을까?
하늘에서 내려온 줄이
썩은 줄인지
나를 구원해줄 줄인지
비교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구원따위 받은 적이 없...다고 생각하고 싶지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조차 구원을 한 번 정도는 받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이 감정과 사고를
어릴 때부터 알았으면 어땠을까.
그저 살고싶지 않다는 생각만을 하는 것만이 아니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뿐만이 아니고
이제는 제발 살고 싶다고 어떻게 해야하는지
알려줬으면 한다고
한 명이라도 내게 그런 방법을 알려줬으면 어땠을까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이대로 오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알았던 인연과 기회는 오지 않았기에
시간 따위를 돌리고 싶지는 않다.
물론 붙잡고 싶은 것은 많으나
그렇게 수정하다보면 끝도 없겠지.
긴 암순응의 시간 속에서
계속 눈을 감고 있었기에
나는 어둠에 익숙하면서도
금방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의 단점을 장점으로
장점은 더욱더 강하게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꾸준히 무엇을 해내야만 하는지 마주보고
일단 내가 할 수 있는 부분부터 꾸준히
성실하게 하자고 마음 먹으며
최대한 많은 분야에서 공부하며
공부를 하면서 후회했던 부분을 정확히 인지해야만 한다.
나는 이과계열을 많이 좋아하고 그 길을 걷고 싶었지만
뒤늦게 내가 문과와 성향이 맞다는 것을 알은 순간부터
나의 이성과 감성은 합쳐질 수 있었다.
그것이 내가 양면적이고 입체적일 수 있는 이유다.
나는 한 번에 두가지 성향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사람.
지금부터 시작하는 것은 분명히 늦다.
하지만 늦었다고 해서
바뀌지 않을 이유도
지금까지 느낀 감정과 생각을
다음에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만으로도
나의 존재 가치는 증명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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