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무언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나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장점 중 하나
기억력과 그것에 대한 경험이다.
나는 점점 나를 알고 있는 사람을 줄여나갔고
그 대상은 나 또한 포함이었다.
나의 과거를 모두 지우고 싶었다.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지금이 처음이어야만 했다.
불행하고 가난하고 우울한 나를 지우고
진취적이고 꿈을 꾸려는 나를 위해서는
절대적으로 필요함이 자명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만 할까
어째서 피해자는 항상 견뎌야만 하는 걸까?
견디지 않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나쁜 길로 빠져버리는 방법도 있겠지만
나는 결코,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지 않기 위해서
나 스스로의 생각을 항상 되물었고
조금이라도 외롭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아니었다.
심연과 고독에 가까워질수록
나의 감정 또한 소모되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밑바닥부터 다시 올라가야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지만
해내야만 하고 끊어내야만 했다.
내 과거의 기억을 대부분 끊어냈지만
끊어내야 하는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나의 신념, 복수, 질투, 세뇌같은 감정들이 너무나 많이 남아있었다.
하지만 나는 점점 자라면서 알게되었다.
그것도 꽤나 긴 시간이 길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인생을 그렇게 오래 살아온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 인생의 4분의 1은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야만 했던 이유는
더욱 앞으로 갈수록
내가 스스로 나아갈 수 있게 한 나의 노력의 시간이
나의 인생에 대비해서
시간적 퍼센테이지가 낮아진다는 것은 확실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직도 비교당하는 것이 너무나 싫지만
나는 아직도 나를 세뇌하려는 사람이 너무나 싫지만
때로는 항상 당하고만 살아야 하냐고
복수 따윈 관심이 없냐고 되묻지만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나의 신념이
나의 본질이 내가 추구하는 진리가 역으로 대답한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그렇게 과거의 대부분을 잊고 살고 있었지만
나는 역설적이게도 다시 나의 과거를 알아야만 했다.
어째서 나는 이런 부분에 트라우마가 있는 것일까?
깊은 통찰과 고뇌 속에서 떠오르기도 하며
우연하게 책을 읽다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로 인해서 답은 꽤 많이 찾았지만
사실 못 찾은 것도 꽤 수가 되기 때문에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나는
필연적으로 다시 이어져야만 했다.
그것이 미래의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나의 마지막 선물이기도 하니까.
나를 이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항상 생각했다.
나의 꿈도, 나의 미래도
내가 하고 싶은 것도
전혀 없었지만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런 부분으로는 가능하지 않았다.
마치 중간이 잘린 영화 같았다.
분명히 이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만 필름이 이어지게 만들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어느샌가부터 나의 이상주의자 마인드는 내려놓기 시작했다.
이상주의를 실현시킬 능력도 노력도 힘도 없을뿐더러
그런 세상은 도저히 올 수 없기 때문이다.
어째서 사람들은 그렇게 욕심이 많을까?
그건 궁금하면서도 궁금하지 않았다.
나는 무언가를 가져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진정으로 해답을 알고 싶었기에
꾸준히 포기하진 않았지만
나는 솔직히 이미 너무나 실망했다.
내가 아는 세상, 내가 원하는 세상과
현재 세상은 너무나 달랐고
사람들 또한 그랬다.
이런 거를 보기 위해서 참고 온 것이 아닐 텐데.
분명히 그럴 텐데..
이 마음을 갖고 과거로 갈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런 일은 절대 생기지 않는다.
그렇기에 미래의 나를 위해 온전히 현재의 자신이 노력해야 하는 것인데
내가 꿈꾸는 미래가 도대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내가 어릴 때부터 꿈꿔왔던 것이
현실화된 것이 전혀 하나도 없는데
그저 닿지 못할 곳만 항상 손을 뻗는 나 자신이 한심한 것인가?
그렇게 노력하고 시간을 쏟아내며 열정을 바친 내 자신이
후회스러운가?
나는 전혀 내가 몰입한 것에 후회하지 않는다.
그 가치도 그 경험도
아무나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알고 지낸 인연들도 매우 소중하고
그 사람들 덕분에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중간중간에 포기하려고 한 적도 꽤 많았다.
그럴 때마다 항상 뉴페이스가 생기곤 했다.
이런 나를 앞으로 더 밀어주게 한 것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았다.
내가 항상 원하던 죽음
내가 항상 논하던 진리
내가 항상 꿈꾸던 미래
내가 항상 바라던 이해
모든 것을 마주하고 나니
나는 모든 시간대의 나와 이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평생 살면서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 따위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나의 과거도 현재도 잘못도
모든 것을 이해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어떻게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겠는가
나 또한 그런 부류의 사람이지만
온전히 100% 이해를 한다거나
내가 직접 그런 대상자가 된 적은 없었다.
살아가면서 조연 따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해받음과 동시에
나의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게 됐다.
내가 원했던 것은 큰 것이 아니었다.
단지 나를 이해해 주는 것이었다.
내가 하는 말을 들어주고 믿는 것이었다.
그게 그렇게 어려웠을까?
나의 시간과 결핍은 누가 보상해 주는가?
그런 것 따위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나의 편 같은 건 없다.
과거의 나의 손과
현재의 나의 손을 맞잡고
셋이서 지켜보며 나의 기억을 이어주게 한 순간부터
나는 다시 미래를 꿈꾸게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 영화가 그렇듯
행복한 연출이 나오면 그 뒤에는 항상 힘든 길이 연출되곤 한다.
하지만 끝내 해피엔딩을 보여주긴 한다.
나 또한 그럴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도
내가 해피엔딩을 볼 수 없다고 해도
내가 누군가에게 그런 엔딩을 선사해 줄 수는 있기에
내가 보지 못한 것을, 내가 느끼지 못한 것을
더욱 누군가에게 느끼게 해 줌으로써
내가 보고 싶지 않았단 것을, 내가 느끼고 싶지 않았던 것을
더욱 누군가에게 보여주지 않음으로써
나의 가치와 노력이 증명될 수 있고
나의 신념 또한 굳게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
이 과정 속에서는 결코 순탄한 길은 한 개도 없다.
1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나
나의 7년이 넘는 통찰의 시간 또한
절대로 짧은 시간이 아니다.
나는 스스로가 되뇌면서
항상 나에 걸린 세뇌와 속박을 풀려고 꽤나 노력했기에
복수심, 혐오 같은 키워드에서 벗어나며
올바르게 행동할 수 있었다.
항상 올바르게 행하는 것이 어렵다.
간단한 길은 항상 쉽다.
그렇기에 내가 가는 길은 항상 어렵다.
어릴 때 내가 한 말이 하나 있다.
"어려워야 재밌고 그 정도는 해야 밸런스가 맞지 않겠어?"라고
생각해 보니 이 정도로 어려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항상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처음 말한 것과 같다.
항상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무언가를 포기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나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 시간과 순간
기억과 경험이다.
하지만 영원토록 기억하려고 노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