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둘, 셋
그리고 또
하나, 둘, 셋
그저 수를 세고 있었다.
그저 시간을 세고 있었다.
하지만 같은 수를 계속 되풀이하는 것은
세는 것에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나의 이야기를 기억에서 지운 뒤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더 이상 들려줄 나의 이야기도
더 이상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이도
더 이상 말할 수 있는 나의 용기도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의지를 꺾지 않았다.
새로운 누군가의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어째서일까?
항상 포기를 하려고 하면
무언가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끝은 끝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어서 그럴까?
하지만 모든 끝이 그런 기회를 부여하진 않는다.
가령, 내가 잊은 내 이야기는
더 이상 복구할 수 없이 끝이 났다.
나의 과거 이야기는 거기서 끝인 것이다.
뒷 이야기도, 에필로그도 없이
마지막 장에서 책을 덮는 것이다.
또한 살면서 읽게 되는 누군가의 이야기도
언젠가는 끝이 오기 마련이다.
언제나 내 옆에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내게 있어서 소중한 사람이란 항상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언젠가 그 사람의 이야기도 끝이 온다.
항상 그랬기에 나는 누군가에게 진심을 쏟지 않으며
항상 거짓의 가면을 쓰기 마련이다.
내가 이렇게 된 것을 남 탓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내가 진정하게 무너진 이유는
나의 진심을 모두 쏟아부은 곳에서는
항상 이야기의 끝을 봤고
나의 의지가 아닌 무언가로 인해서
항상 다음 페이지로 넘길 수 없게 만들었다.
그냥 그런 별거 아닌 트라우마로 인한
나의 소심한 방어기재일뿐이다.
그렇다고 트라우마는 별게 아닌 것이 아니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나 또한 항상 애매모호했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추구하는 것인가?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은 뭐고
두 가지의 모습 속에서
어느 곳에 서있어야 하는가?
나는 A와 B, 두 곳에 발을 걸치고 서있는 사람에 불과하다.
나는 하나만 선택할 수 없으며
또한 둘 다 선택할 수도 없다.
그렇다면 이 애매한 나를 이해해 줄 사람이 있을까?
줄곧 시도했다.
나의 이야기를 이해해줄 사람이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줄 사람이
평생 언젠가, 언젠가를 되뇌며
항상 언젠가를 되뇌며
그 희망만을 찾아서 내 등을 떠밀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나는 이제 내 이야기는 더 이상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를 나를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렇기에 항상 시도했을 뿐이다.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읽지 않아도
나와 처음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야기를 전부 읽어준 사람처럼
내게 이해할 수 있다고 포용할 수 있는 사람
언제나 그랬듯
내가 모든 걸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는 것인지
일부러 기회를 준다.
세상의 장난감이 된 느낌이었다.
이번에는 진심이어도 되는 것일까?
마지막으로 한 번만
정말 마지막으로 속아봐도 되는 걸까?
내가 진심으로 대해도 되는 걸까?
이때까지 매번 배신과 실패뿐이었지만
또 바보처럼 마지막으로 속아도 되는 것일까라고
속으로 몇백 번을 되뇌어도
나는 이런 사람이기에
매번 여기까지 몰렸을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또다시 속았을 뿐이다.
근본적으로 내가 문제인 것인가?
기회를 주는 것이 맞을까?
나의 문제인가?
나는 아직 여기서 멈추고 싶지 않은데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서
너무 궁금해서 정말로 읽고 싶은데
왜 항상 내게는 허락되지 않는 걸까?
끝을 보기는커녕
나는 항상 이렇다.
내가 읽을 수 있는 이야기는 어디까지일까?
내게 허락된 곳은 어디까지일까?
도대체 무너지는 마음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이 뭐라고 생각하기에
내게 계속 이런 헛된 희망과 기회만 주어지는 걸까.
나의 존재가 이 세상의 이야기에 적합하지 않은 걸까.
내가 잘못한 건가
또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해야 할까
모든 것이 내 잘못이라고, 또 고쳐야만
나아갈 수 있는 걸까.
평범한 것이란 건 뭘까.
나는 주인공이 될 수 없는 걸까
내 이야기 속인데도 말이다.
항상 조명은 나를 비추지만
그렇기에 빛은 항상 나를 따라다니지만
그 때문에 그림자 또한 나를 항상 따라다닌다.
내 문제겠지 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나다운 거겠지.
그런 것이 내 이야기의 전부라면
뭐 하러 존재하는 걸까?
나의 이야기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내 이야기가 바뀌려면 뭘 해야 할까
그냥 조금, 조금만이라도 쉽고 편하게 가면 안 되는 걸까?
내가 막 엄청난 걸 바라는 건 아닌데 분명하게 말이다.
더 이상 무언가를 들을 힘이 나질 않는다.
더 이상은 앞을 바라보기가 힘들다.
이대로 눈을 감았을 때 보이는 것이
나의 전부일까.
항상 꿈을 꿀 때 나오는 영상들이
나의 미래일까.
나는 어디까지 나의 이야기를 적을 수 있을까.
나에게 허락되는 것이 어디까지인지
내 스스로 어디까지 알아봐야 할까
누가 시작한 이야기인지도 모른 채
고난만 지나가야 하는가
나는 또다시 나의 이야기와 공명할
또 다른 이야기를 찾아 나서겠지.
또다시 언젠가라고 되뇌면서
헛된 희망을 가진 채로
할 수 있는 것은 이런 것밖에 없으니까.
그렇다고 한들 내가 잘못한 것은 없다.
진심을 다하는 쪽이 어째서 잘못일 수가 있겠는가?
내가 유일하게 잘못한 것은
과거의 내 꿈을 이루지 않고
내겐 재능이 없다고 스스로 폄하하고
꿈의 길을 끊어버린 나이며
내가 사과해야할 대상은 과거의 나다.
나는 그저 세상을 탐험하고 싶은 이야기꾼에 불과하지 않았는데
비교와 세뇌를 한 건 남이 아니라
결국 내 스스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