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었던 말 중에서 기억이 자주 상기되는 것은
"빛이 나는 사람에겐 자연스럽게 좋은 사람이 모인다"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빛이나지 않는 사람일까?
그런 건 사실 잘 모르겠다.
나는 부감을 하는 스타일인데도
아직 선생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걸까?
가난하다거나
불행하다거나
무슨 사연이 있다거나
당연히 각자의 사연, 이유, 무언가가 있는 거지만
나 같은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고
불행마저도 저울질을 하며 누가 더 불행하냐는 것을 고하자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본인이 참을 수 있는 정도의 그릇은 다른 법인데도
사람들은 다들 그런 사연쯤은 하나씩은 있어라는 말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도 싫어질 것이고
그런 말을 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상황이 너무나 안타깝고
그만큼이나 의지할만한 무언가가 존재하지 않고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리 강구해 봐도
답은 보이지 않아.
연말, 연초, 기념일 등 사람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단어가 많지만
그와 동시에 아무 곳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물론 나 또한 누군가를 품어줄 수 없는 사람에 불과하겠지만
무언가를 동경하는 것이 탐험가의 지혜가 되는 동기가 되기 때문에
나 또한 무의식적으로 계속 무언가에 의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솔직히 말해서 살고 싶은 마음이 더 적다고 생각한다.
근데 뭐랄까, 원래는 이게 정상 값이었는데
한 번 비정상의 궤도에 올라갔다오니
다시 돌아오는 것이 힘든 건가 싶다.
나는 누구에게 기억되고
누구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
불행이 점점 내 머리를 짓누르고
불행의 양이 차곡차곡 쌓여가면
고개를 드는 것이 너무 힘들기 마련이라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한다.
모든 기억을 나열할 수 있는 기계가 존재한다면
불행과 행복을 모두 나열할 수 있고
나에게 부여되는 점수가 존재한다면
마이너스의 끝부터 플러스의 끝까지 점수를 부여한다면
내 최대 불행의 기억은 무엇이고
내 최대 행복의 기억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하고 지울 수 있다면 지우겠냐는 질문에는
사실 애매한 생각뿐이다.
미미한 것을 지우는 건 그렇게 크게 작용되지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큰 기억일수록 내게 돌아오는 결과는 클 테니까.
불행의 요소는 엄청 많지만
나는 그중 몇 개를 꼽자면.. 굳이 꼽자면
세뇌와 차별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환경일수록 저 두 요소가 극에 달하기 마련이다.
가난하다는 말은 금전적인 물리값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요소도 포함되는 것이다.
참 지나온 시간을 보면 세뇌라는 부분은
나 스스로 이겨낼 수 있고 꾸준히 나의 마인드로
나의 색을 꾸준하게 강조할 수 있지만
차별이라는 것은 정말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너무나 큰 재앙 같아서
의식하고 싶지 않아도
그 서러운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것이 지금처럼 특별한 날일수록 말이다.
누군 되고, 나는 되지 않는 상황 속에서
누군가와 비교하며 나는 할 수 있다고 속이는 행위마저도
영겁의 시간이 지나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인 것이 자명한데
대체 이 세상 속에서 누가
이렇게 넓은 세상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사는데
나를 꾸준히 기억하거나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인지한 순간부터
시간이 흐르고 흘러 통찰하는 나에게로 흘러온 마음까지
변한 상황이 하나라도 있는 걸까?
나는 손가락 구조가 조금 불편해서
학창 시절 때 항상 연필을 잡는 것이 많이 불편했다.
하지만 이 연필이야말로 내가 생각하는 것을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도구 중 하나였다.
하지만 손재주가 그다지 좋지는 않아서
항상 연필을 깎다가 흑연이 부서지거나
연필이 그대로 부서진 경험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연필을 잡고
선생님과의 시간을 보내며 귀를 기울였다.
선생님은 항상 내게 중요성과 이해를 논했지만
그런 개념을 이해하기에는 나는 너무 어렸다.
연필은 단순한 도구처럼 보여도
그 속에 담긴 것은 불멸에 가깝다고 하셨다.
그런 것이 도구의 진정한 힘이라고.
어떻게 사용하냐, 어떻게 활용하냐에 갈리는 것이
그 무엇이든 간에 본질은 같다고.
연필에 담긴 이 나무와 흑연은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것들이 있었기에
너무나 아름답고 멋진 것들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특히, 연필 속에 담긴 이 흑연은 다이아몬드와 본질적 구성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렇기에 단단한 마음과 정신력을 유지하여
그 끝에 닿아야만 한다는 것을
그런데, 그런데 언젠가부터 정말로 불합리하다고 생각했다.
어찌 흑연이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냐고 생각했다.
본질이 같다고 해서 결과가 같은 것은 아니라고
태어날 때부터 다이아몬드라면 쉬운 것이 아니냐고
둘은 아예 다른 것이 아니냐고.. 생각했다.
막상 생각은 그렇게 하고 말은 이렇게 했지만
그 누구보다 선생님의 말을 깊게 헤아리고
실천을 하려고 하는 건 언행불일치지만
그렇기에 선생님의 언어를 전하는 것이
나의 숙명 중 하나라고 생각했으니까
그건 나에게 있는 죄책감을 덜 수 있는
최선의 방어라고 생각했을 뿐일지도 모르겠다.
그 사람의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잘못을 덜어내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사실 이렇게 말할 정도의 큰 잘못은 아니다.
그저 방관자의 입장이 역겨웠을 뿐이다.
나 또한 그런 방관자들을 보면서
역겨워한 시절이 있었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기억들마저도
그런 하찮은 기억의 조각마저도
그렇게 모이고 모여서 나를 형성한다는 것이
사실 두렵다.
나는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았을까?
환경에 대한 불만을 갖지 마라고?
불행했던 기억을 잊고 앞만 보고 가라고?
내가 바꿀 수 있는 것부터 바꾸자고?
내가 노력해서 얻어내는 것이
내가 노력해서 이뤄내는 것이
내 사람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것이
그런 것들이.. 쉽게 되는 게 아니잖아
근데 왜 그렇게 쉽게 말하는 걸까.
나는 그렇게 쉽게 말하는 순간이 너무 싫어
쉽게 사랑이 찾아온다고 말하지 마
쉽게 괜찮다고 위로하는 것도 싫어
쉽게 외로움이 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그렇게 쉽게 남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지 마
이해라는 개념이 얼마나 깊은 단어가 내재되어 있는 말인지
아무렇게나 사용하는 것이 나는 싫어
누군가는 좋거나 행복한 시간을 느끼거나 경험할 때
나는 불행 따위를 느끼고 싶었던 것이 아니야
딱히 그런 말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었는데도
누군가는 생일파티를, 어떠한 기념일을
누군가는 축하를 받는 순간에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에 불만을 가진 적은 없어
하지만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나를 알고 있는 입장에서 굳이 그런 말을 해야 할까 싶은데도
그러면서도 내가 사실 넘어가면 되는 문제긴 하지만
항상 내가 질 수밖에 없는 걸까?
마음이 괴로운데도 빛이 나는 사람이 될 때까지
끝까지 버텨내며 앞으로만 가야 하는 걸까?
내가 애초에 살아있는 거긴 할까?
이 길을 가도 가도 계속 헤매는 것만 같은데
이 길 끝에 네가 서있는 걸까?
어떠한 보상이 있길래 이렇게 돌아가야만 하는 걸까
나는 그래서 아무 기념일도 챙기지 않았다.
가끔 친구의 생일을 챙겨준 적은 있었다.
하지만 나 자신을 내팽개치고 있긴 했지만
내가 기념을 할 만큼 그런 특별한 날도 이제 존재하지 않고
그런 감정을 나눌 사람조차 없다.
그게 내 잘못인 것도 있고 아닐 때도 있다.
그걸 다 기억하지는 않는다.
이미 지난 기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만 알아줬으면 하는 건
나는 너무나 외로워도 혼자 있는 사람이고
그것이 오히려 나의 목을 조르기에
내가 숨을 쉬고 있는지 살아있는 건지 알 수 없어서
그런데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서 내 마음에 꾸준하게 빛을 내며
이 길 끝에 대체 무엇이 존재하는지 밝히려는 것이다.
그런 것도 탐험가라고 생각하는 걸까
뭔가 수면제를 먹고 글을 써서 그런가 횡설수설의 느낌이다.
일기니까 상관없잖아 누가 본다고
이번해도 최악으로 끝나는 걸까?
말하지 못한 것도 많은데 아쉽네
나의 미래는, 우리의 미래는 어디로 향하게 되는 걸까
나에게 두 번째 생일이 생길 수 있을까?
첫 번째 생일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로 말이야.
난 정말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