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연말이란 무슨 의미로 다가올까?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세대라고 한다면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는 시기에
그와 동시에 미성년자에서 성인으로 바뀌는 세대가
무슨 생각을 했을지가 항상 너무 궁금했다.
그런 경험을 했다는 것이 부러웠다.
나는 절대적인 경험주의자에 가깝기도 하고
애초에 깔려있는 신념적 부분이 그럴 수밖에 없으려나 싶다.
그래서 가끔 여행을 간다거나
뭔가의 특별한 시간을 보내기도 하는데
이런 시간이 여행같은 기념할만한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된다.
사실 연말 자체로도 세상에는
반짝이고 행복한 말로 포장되어 있는
모습으로 메이크업 되어있으니까.
내게 12월 여행은 무슨 테마를 지니고 있었을까?
나는 처음부터 내가 보고 싶어 하는
내가 보고 싶어 했던 콘서트를 보기 위해서가 주목적이었다.
왜 보고 싶냐.. 라고 물어볼 때 딱히 뭐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다.
두 가지 정도가 있지만
그렇게 말하고 싶은 요소는 아니다.
1년마다 바뀌는 것이 많았다.
살면서 이 2년 동안의 흐름이 가장 중요했다고 생각한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희망에서 행복으로
행복에서 꿈으로
그리고, 꿈에서 꿈으로
같은 꿈이지만 의미는 다를 뿐이다.
이다음에 보이는 풍경은 어떨지 알 수 없지만
결국 붓은 내게 있으니까
판단을 하는 나 스스로가 더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일필휘지의 능력을 갖고 있지는 않다.
그렇지만, 본질적으로 눈치채거나 꿰뚫어 보는
해보지 않은 것을 해본 것처럼 이해할 수 있는 내 능력이
의외로 대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올해 쌓아온 이야기는 무엇일까?
내 일기는 보통 내가 무너진 이유를 찾았던 일이 더 많았다.
무너진 이유를 찾아야만 다시 쌓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너진 이유를 셀 수 있을 만큼이나 많이 알게 되었고
그럼에도 아직 포기하지 않고 매번 해보려는 나를 확인한 해였다.
그 자체만으로도 내가 얼마나 나 스스로를 통찰하려고 한 것인지
나 자신이 나를 얼마나 더 이해하려고 한 것인지
어떠한 부분 때문에 내가 힘들었는지 스스로 납득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이 자리에 서서
그만두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아직 빛나는 사람이 되지는 못했지만
사라지지 않고 내 마음속에 그대로 있을뿐더러
나는 반드시 그 기대를 보답해야만 한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나 무언가를 위해
살아갈 때 원동력도 많고
그것이 곧 행복에 귀결되는 일임을 안다.
나를 이해하는 것, 나를 통찰하는 것 그리고 나를 해석하는 것
이런 부분들은 살면서 쭉 이어질 것이다.
나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남들 뿐만이 아니라
항상 작가시점으로 보고 있는
나 자신 또한 포함이기 때문이다.
뭐, 부감을 하는 시점에서는 제3자 입장이기도 하네
내게 물질적인 요소는 전혀 욕심이 나지 않는 것이 문제지만
목표, 목표란 게 있으면 나는 주저 없이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단 한 번도 아닌 적이 없었기에
물론 그렇다고 해서 100%를 확실할 수는 없지만
나는 보장할 수 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라면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그렇게 살아가는 내가 더 행복하다는 걸 아니까.
누군가를 위해 사는 것이 그렇게 나쁜 일은 아니다.
천성적으로 타고난 성격으로 살아가는 것도 꽤 괜찮은 일이다.
가끔 그런 말도 듣는다.
깊게 대화한 사람에게서 듣는 말인데.
큰 불행이 있었고, 그런 많은 일이 있었는데
잘 버텨줬고 여기까지 와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실 때
되게 좋은 말을 해주신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역으로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렇게 큰 불행이 있었기에
얼마나 큰 행복이 있는 지를 알 수 있고
그 행복이란 별들이 모여서
나의 우주를 밝혀줄 때
나의 그런 불행들은 아무렇지 않게 버틸 수 있다.
행복의 크기가 작아도 괜찮다.
본래, 작은 행복으로도 큰 불행을 잊고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고 나 또한 인간에 불과하다.
나는 천재도 아니고 뭔가 능력이 특출 난 사람이 아니지만
내가 고집하는 정의와 신념만큼은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누군가의 힘듦과 고통을 나눠 들고
누군가를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내가 이해하는 나 스스로이다.
나의 진정한 빛은
내가 좋아하는 너를 이해하는 마음으로부터 나온다.
항상 벽에다 내 이야기를 적고
내 고민을 털어놓고
그런 시절은 나만 가져도 된다.
나는 과감하게 너의 벽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가고 싶다.
나는 어떠한 고통도 감내할 수 있고
그 고통 따위가 너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한다.
그것이 내 천성적인 성격임이 분명하다 생각한다.
이게 나니까.
나의 이야기를 다시 읽을 수만 있다면
수정하고 싶은 부분도 꽤 많을 것이고
그대로 보존하고 싶은 부분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건들지 않고 그대로 있어야만 현재의 내가 되는 것이고
물론 후회하지 않냐라고 물어본다면 그건 또 아니다.
하지만 후회라는 감정은
실패, 행복, 후회 뭐가 됐든 간에
그것은 내가 앞으로 판단하고 나아갈 수 있는 근거로 바뀌게 되고
나의 단점은 모두 장점으로 바뀔 수도 있다.
세상은 바뀌기 마련이고
나 또한 그에 맞춰서 바뀌어야 할 요소가 많다.
누군가를 좋아하기 전에는 몰랐다.
나는 나를 좋아하고 있었는가?
나 자신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데
누군가가 나를 좋아하길 바라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딱히 내가 나를 싫어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내가 생각했을 때의 나는
별로 살고 싶지 않은 마음이 너무 가득 차서
더 이상 무언가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항상 내게 떠나지 않는다고 모두가 그렇게 말하지만
실상은 어떨까?
모두가 나에게서 떠난 사람이 잘못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말하고 떠난 사람은 뭐가 되는 걸까?
본인의 사정, 개인의 사정 그렇겠지 항상
항상 그런 말로 포장할 수밖에 없겠지
나 또한 그랬을 테니까.
나는 더 이상 누군가의 이야기를 쉽게 다시 읽지 않아.
그냥 뒤로 밀어버리거나
그냥 아예 잊어버리거나
잊기 싫은 것은 잠시 냉동시켜 둘 뿐이다.
언젠가 해동할 수 있는 날이 오길 기원하면서 말이다.
보고 싶은, 대화하고 싶은 사람이 몇 명 생각이 나나,
내게는 이제 그럴 수 있는 권한이 없다.
그저 암흑 속에서 산을 오르는 것과도 같다.
하지만 반딧불이가 없을 거라고 체념하지는 않는다.
언젠가, 언젠가라고 되뇌면서
나는 또 자신을 속이는 것이 아닌
꿈을 위해서 나 자신을 바꿔나가는 과정이다.
시작과 끝은 같지만
과정이 다르기에
그건 절대로 같다고 할 수 없다.
나의 이야기가 끝나서 책이 덮이는 순간이 온다고 한들
누군가는 반드시 내 이야기를 다시 읽을 테니까.
나 또한 내게 있어서 지나간 사람들이 그렇다.
어떤 판단을 한다고 해도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기에 후회를 덜한 쪽으로 계속 매번 정할 뿐이다.
내가 진심을 다할 때는 버벅거리는 면이 있기에
후회가 없는 건 살짝 어렵지만 말이다.
우울한 시간 또한 많았으나
그만큼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도 많았고
이때까지의 시간 전체보다
이 2년간의 시간이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었기에
그저 행복한 꿈 속에서 깨고 싶지 않은 어린이의 투정일 뿐이다.
약효가 오는 듯하다.
이번 연도의 마지막 밤은 이렇게 마무리가 된다.
언제나 말하는 것이지만
일기니까 그냥 평범하게 흘러가듯이 적어도 되니까.
나를 다시 읽어주러 오는 사람을 위해서
나는 꾸준히 나를 이해할 것이다.
그것이 누군가가 아닌 미래의 나 자신이라 할지라도
꾸준함은 배신하지 않으니까.
지금의 나는 완성본이 아니지만, 다시 읽을 가치가 있는 초안이기에
같이 나와 이야기를 써 내려갈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