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나의 이야기

나를 이해하려는 네게 나를 소개하는 안내서

2026

원을 펴다

vnfma0225 2026. 1. 2. 06:25

이과라는 것은

 

수학과 과학을 주로 공부하는 집합을 칭한다.

 

사실 나는 내가 이과적 성향이라고 믿고 살았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수학을 되게 좋아했고

 

외우는 것 또한 많이 좋아했다.

 

생각해 보면 그냥 공부를 잘했을 때에 듣는

 

칭찬이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보면 참 아이 같다.

 

딱히 지금도 변하지 않고 칭찬을 좋아하는 듯하다.

 

 

 

하지만 내가 이과적 성향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계기는

 

별거 아니라고 보일 수도 있지만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없어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기 시작하자라고 마음을 먹고

 

한 사람, 또 한 사람 그렇게 수가 늘어날수록

 

나는 문과 성향에 가깝다는 것을 알았다.

 

단순히 이과의 공부를 하지 않아서라거나

 

문과에 대한 공부를 해서라거나 그런 건 아니다.

 

나는 나의 재능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사실 재능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준다.

 

남의 깊이를 헤아린다.

 

남을 본질적으로 이해한다.

 

내가 체험해보지 않아도

 

그 사람의 입장에서 느낄 수 있다.

 

이 모든 것이 내가 가진 재능 중 가장 크지 않을까 싶었다.

 

이런 것이 왜 가능한 걸까?라고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렇기에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어째서 체험해보지 못한 일도

 

내 일처럼 느낄 수 있고

 

그것이 감정을 넘어 피부, 나의 생각까지 옮겨질 수 있는가?

 

요즘은 그걸 F라고 부르긴 하지만

 

내가 이런 고민을 할 때는 그렇게 간단하게 부를만한 요소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의 마음속에 들어갈 수 있는

 

그 사람이 가진 문의 열쇠를 복사할 수 있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나의 사고과정이 남들과 다른 것도 한몫했을 것 같기도 하다.

 

 

 

내가 그토록 남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이유는

 

그만큼 나 또한 그 사람이 내 마음을 헤아려줬음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더 이상 나를 헤아릴 수 없기에

 

조금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나는 누군가랑 친해질 때

 

특히 이름에 대해서 많이 물어보기도 한다.

 

뭐 이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나는 뭐가 다를까?

 

나는 그것이 내가 논한 내 사고 과정에 차이가 있다고 본다.

 

내가 좋아하는 언어 이론 중에서

 

"사용하는 언어에 따라 사고 과정이 바뀐다"라는 이론이 있다.

 

나 역시 그에 동의하며, 그 이유는

 

나는 한국에서 쭉 자라긴 했지만

 

한글을 배운 적 없이 단순한 한국어만 배웠을뿐더러

(나는 어릴 때 말을 잘하지 않고 보통 감정 표현을 했다.)

영어나 다른 언어를 주로 접하면서 크기도 했고

 

결국 여러 개의 언어를 접하면서 자랐다.

 

그와 동시에 나는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또한 동시에 생각하는 천문학자가 되고 싶어 했으니

 

나는 언어와 과학의 조화를 이루는 형태의 표현을 사용하게 되었고

 

그것이 나의 사고 과정 및 방식으로 자리 잡혔다.

 

시간적 관점으로 봤을 때

 

어릴 때의 나는 자라서 뭔가 막 대단한 것은 아니더라도

 

무언가를 이룰 사람처럼 보이면서 보이지 않았다.

 

나의 재능의 한계 또한 동시에 보였기 때문이다.

 

사실 내게 재능이란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앞과 뒤를 모두 보고 있다는 것은

 

꽤 별로였다.

 

"나는 딱히 노력을 하지 않아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어"

그리고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저 별에 닿지 못해"가

 

공존하는 이상 나의 현재는 항상 애매모호함으로 가득 찼다.

 

 

그렇다고 항상 애매한 것은 아니고

 

열심히 하고 싶어라고 마음먹은 것은

 

항상 최선까지는 모르겠지만

 

적당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결과를 보였다고 본다.

 

물론 중간에 포기해서 아쉬움이 남은 것들은 많다.

 

 

 

결국에 나의 문제점은 나의 장점에 존재하며

 

나의 단점 또한 나의 장점으로 변할 수 있다.

 

나는 나의 과거와 미래를 보면서 내 현재의 한계를 정할 것이 아니라

 

해야 한다,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갖고

 

항상 빙빙 돌고 있는 원(圓)적 사고방식을 떠나서

 

직선형 사고방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가장 효과가 좋은 처방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위해서, 그것을 하기 위해서

 

또,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예전의 나처럼 또다시 열정적으로 해내는 것만이

 

나의 지름길이자 원래의 내가 하고 싶었던 방법일 것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았는데

 

끝에 닿은 적은 결코 없으니

 

사실 이제와서는 조금 지루하다.

 

그렇게 변할 수 있을 만큼의 무언가가 또다시 생길 수 있을까?

 

애매하게 반직선 따위로 남지만 않았으면 좋을 텐데.

 

혼자 있으려고 하는 것도 조금 고쳐야 할 것 같기도 하다.

 

혼자 있으려는 것보다

 

얕은 관계보다 깊은 관계의 소수를 중요시하는 나이기에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걸 이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언제까지 나 자신만을 희생할 수는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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