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나마 고양되는 기분은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을 가리키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것은 꽤나 어려운 시간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혼자를 자처하게 된 것에 있어서
말하지 않았던 것이 하나 있는데
딱히 나쁘거나 좋거나 그런 어떤 선에 서있는 것이 아니고
그냥 나는 약했다.
누군가와 어울리기에는 약했다.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말이다.
내가 올바르게 쳐다볼 수 있게 된 것은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다라는 말을 되뇌며
자신에게 탓을 돌렸을 뿐이었다.
사실 남 탓을, 주변 탓을, 세상 탓을
하는 게 더 이롭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던 내게 있어서
이상과 자유론은 더욱 가까이 느껴졌다.
결국 모든 과거의 기억들이 모여서
현재의 나를 이룬다는 말이 존재하려면
이런.. 뭐랄까 차라리 그런 것 따위 존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뭐가 옳은지 따위 순서를 정하기도 싫다.
약한 과거도 현재도
그저 약한 채로 살아가는 것 따위 썩 좋지 않다.
학교의 친구들이 어딘가로 놀러 가도
다들 무언가 좋은 기억, 좋은 이야기를 꺼낼 때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들을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는 책을 읽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내가 체험해보지 못할 기억과 경험을
누군가에게서밖에 알 수 없었다.
살면서 내가 그런 것들을 경험할 수 있을까?라고 되묻지도 않았다.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내겐 그럴 권리가 없다고.
약하다는 것은 정말로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힘들다고 생각했다.
언제 어떻게 죽을 수 있을지 따위나 고민했다.
사실 그런 마음은 없을 텐데 말이다.
어느 정도 신체적의 약함은 사라지기 시작할 무렵부터는
정신적으로의 약함이 더욱 부각되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불행한 것보다
조금씩 불행한 것이 나아지는 것처럼 보이는
희망 같은 빛이 더 불행하다는 것을 알기까지
그렇게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착해지고 싶어 같은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는
나 자신 자체를 의심하기도 했다.
누가 이런 생각 따위를 할까? 싶기도 했다.
그럼 착하다는 것은 뭘까?
나는 뭐에서 착해지고 싶은 걸까?
내가 착해지고 싶다는 건 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닐까?
솔직히 나쁜 짓을 안 해봤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내가 나쁜가?
그렇다고 내가 나쁜가? 했을 때는 모르겠다.
누군가에게는 나쁜 사람으로 남아있을 것이지만
내가 보는 나는 나쁜가라고 평가한다면
솔직하게 있어서 내가 보는 나는
너무 어렸다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약했기에
남들보다 느렸기에
나는 달릴 수 없기에
남들이 달려가는 속도에 맞출 수가
맞추려 할수록 넘어져서 더욱 따라잡기 힘드니까.
나는 궁금한 걸 해결해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으니까.
지금 붙잡고 있는 것을 해결하지 않으면 다음으로 나아갈 수 없으니까.
상대적으로 느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언제나 특별한 존재이고 싶다.
나에게 있어서는 나의 세상이 전부일까?
내가 보는 세상만이 전부일까?
잡생각이 가득 찰 때는
눈을 감고 내면의 우주를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눈으로 보는 이 세상의 무언가는
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 우주와 비교될 수 없다.
내가 이때까지 달려온 기억도
한두 번씩 쉬었던 순간도
행복하다고 느꼈던 장면도
슬퍼하고 흐느꼈던 감정도
화가 나서 답답했던 마음도
그 무엇이든 간에 내 우주 안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세상을 달려 나가는 것에 있어서 항상 느렸던 나는
남들과 매번 비교될 수밖에 없었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내면 우주 속의 나는
하염없이 걷고 달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자명하게 존재하기에
나는 남들보다 느리다고 해도
달리고 싶다.
스스로 한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까?
일부러 모국어를 피하고 다니면서 살아왔기에
단어 선택이나 표현력이 많이 부족했지만
이제는 조금 나아졌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노래나 문화 같은 것들을
항상 외국의 문화로 접했는데
사실 이건 어릴 때부터 마음속으로 다짐한
내가 생각했던 것을 증명하는 단계 중 하나였는데
물론 이것도 천문학자의 꿈을 갖게 된 계기 중 하나였지만
살아가면서 생기는 언어 이론이 나를 이해시켜주고 있다.
내가 밝히지 못한다고 생각했던 것을
누군가가 대신해주고 있다는 건 꽤 나쁘지 않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부러운 게 맞다.
나는 절망하고 포기했으니까.
포기하지 않은 삶이 부럽다.
그런 환경이었을까? 궁금하기도 하다.
천문학자의 꿈을 가졌던 나는 그 자리에 멈춰있지만.
바통을 이어받아 달리는 현재의 나는
몇 번째의 나인지 모를 정도로 멀리 왔지만
아직까지도 달리고 있다는 걸
과거의 내게 말해주고 싶다.
아직도 달리고 있고
더, 달리고 싶다고
마지막 장을 볼 때까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