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인 건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나라는 존재를 받아들일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었던 최선이 무엇이었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마도, 그저 「 」라고.
내가 아무리 용을 써서 나를 죽인다 한들
그저 꿈 속일 뿐이라서 다시 깨어날 뿐이다.
그것이 무한하게 반복되는 것이
나의 저주라고 생각했다.
나를 인정할 수 없는 나는 무엇일까?
애초에 이런 감정이나 생각 따위를 논하게 되어야만 하는
하필, 하필이면 그게 또 나여야만 하는
그런 상황 따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를 인정할 수 없었고
나 자신이 무언가에 도착해서 끝나는 것 또한
보기 싫었던 나에게 있어서
무한한 이야기라는 문장은
그저 회피에 가까운 몽유도원일 뿐이다.
나는 이야기 속 등장인물도 아니고
어떠한 가상 현실속 NPC도 아니다.
그렇기에 더 잔인하다고 느껴진다.
문학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그리고 현실적으로도
나는 항상 이 곳에 있지만
존재하지 못한다.
별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시작한 행동 하나는
그저 매번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기를 유지하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이 행위가 나 자신을 더욱 갉아먹는 어둠이 아니었을까?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이성적이지 않아도 돼.
평화를 논하지 않아도 돼.
자유를 추구하지 않아도 돼.
평등을 따라가지 않아도 돼.
이상적이지 않아도 된다고.
이 모든 환경이 주는 아픔을 대신 맞고 있던 것은
내가 없애고 싶었던 나만의 순수함이었다.
하지만 순수하다는 것은 매우 주관적인 내 표현에 불과할지 모른다.
나는 내가 악하다고 믿기에
순수하다거나 착하다거나 그런 방향성을 추구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제와서는 알고 있다.
처음부터 순수하던 착하던 그 무엇이던 상관없다는 걸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는 내가
선을 추구하는 길을 이미 걷고 있다는 것을
고통스러운 삶은 언제나 힘들기 마련이지만
강인한 정신력이 따라오기 마련이다.
나는 사실 잘 모르겠다.
대체 뭐가 우선적으로 발동되는 걸까?
내가 정신력이 높았기에 버틸 수 있었을까?
내가 고통스러웠기에 정신력을 점차 얻어간 것일까?
뭐, 그런 순서따위는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지만
과거를 보는 현재의 내 입장에서는
이 모든 기억의 퍼즐이 모이지 않는다면
내가 아는 나는 없고
내가 기억하고 싶은 소중한 기억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는 둘이 같은 말이라고 생각한다.
변수가 다를지 언정 모두가 비슷한 고통을 인내하고
감수하며 이 길 끝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바다와 같아서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 깊이를 헤아리려면 직접 몸을 맡기는 것밖에 없기에
언제나 나는 탐험가가 되고는 했지만
내 자신의 바다를 보여주고 싶었던 또 다른 탐험가는
그다지 없었다는 부분이 오히려 아쉽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미래의 일은 모르는 거지만
어두운 밤 속에서 항해하는 것은 멈추고
잠시나마 땅을 밟고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였을까?
나의 마음 속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던 것이
언제부터였는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내가 생각해야 하는 건 단순하게도
다시 해가 뜨길 기다리고
해가 뜰 수 있게 준비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나만의 꽃이 피어
다시 해를 볼 수 있으니까.
그저 간단한 것만 같다.
사실 이런 마음을 잘 먹지는 못한다.
나는 기본적으로 의존성을 높게 띌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의 이름마저도
그럴 리 없을 것만 같다.
한 번쯤은 그래도 생각해 봤던 건데.
같이 보고 싶었을텐데
해가 뜨고 나면 빛으로 가득 찬 정원에서
진실된 눈으로 너를 쳐다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그럴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무엇이 정답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래서 재밌는 게 아닐까라고
매번 어려운 게 좋다는 소리나 하고 있으니까
참 낙천적인 건지 바보인 건지
구분이 가지 않지만
언제나 똑같이 말하고 싶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은
「 기다리는 것 」이라고.
아침이 오는 것을 맞이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