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나의 이야기

나를 이해하려는 네게 나를 소개하는 안내서

2026

거짓된 세계

vnfma0225 2026. 6. 10. 07:26

위선도 선이라는 말이 있지만

 

사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난 위선자 따위가 정말 싫었다.

 

누군가를 걱정하는 척

 

누군가를 위하는 척하며

 

자신의 안위나 이득 따위를 챙기는 사람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내가 선을 향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했지만

 

나 또한 위선자가 아닐 수 있을까?

 

 내가 남들에게 행하는 것은 선인지 위선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누군가에게는

 

상처일 수도, 구원일 수도

 

듣기 전에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내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자격 따위가 어디에 있냐고

 

물어볼 수밖에 없을 뿐이다.

 

 

 

 

어릴 때부터 어렴풋이 느꼈을 것이다.

 

분명 내가 하고 있는 행동이 잘못되었지만

 

 해야만 한다고.

 

왜 해야만 했을까라는 질문에는

 

사실 본인의 이기적인 합리화일 뿐이겠지만

 

항상 그렇듯이 나의 존재 자체를

 

세상에 있어서 인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보지 못한다고 한들

 

꾸준하게 나의 존재라는 것을, 나라는 것을

 

줄곧 내 마음의 벽에 적어내고 있다는 건

 

결국 누군가 내가 했던 것처럼

 

처음 내게 알려줬던 그 마음처럼

 

끝에 구원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까?라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내게 있어서 구원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나 또한 피해자고 수많은 트라우마가 있지만

 

그와 동시에 나는 가해자며 외면할 수 없다.

 

그렇지만 나는 나를 포기할 수가 없지만..

 

대체 무엇을 보고 싶기에 계속 바라는 건지 모르겠다.

 

애초에 내게 그럴 권리가 있을까?

 

언젠가 이 어둠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언제나 피해자의 몫이라고 생각할 뿐이면서

 

스스로가 가해자라고 인정해버리는데도

 

어쩔 수 없다고 치부해 버리면서

 

그저 선을 논하고 바라는 것이

 

그저 내게 그런 사람이 나타나는 것이

 

내게 새로운 꿈이 생기는 것이

 

그런 것 따위가 구원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제대로 알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세상 자체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방향성은 절대 오지 않는다.

 

이상을 추구한다는 건 그런 것이니까.

 

그렇다고 오지 않는다 해서 포기하는 건 아니다.

 

어쩌면 이미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구원을 내리는 것은 그 어떤 환경도 그 어떤 사람도 아닌

 

나 자신, 스스로라는 것을 말이다.

 

나는 당당하지도, 억울하지도 않은 선에서

 

그저 나 자신을 구원해야만 한다.

 

이 세계에는 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선이라는 것은 누군가 정하거나

 

누군가 올바름이라는 말 따위로 정했을 뿐이고

 

선은 언제나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스스로를 용서하고 구원해야만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을 텐데, 잊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 몰랐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으니까.

 

이런 이유는 내가 착하거나 선한 것을 추구하거나 그런 이유 따위가 아니라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틀려먹었음을 깨달았다.

 

나는 나를 인정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으며 죽음 따위나 기다리는 나약함 그 자체였다.

 

하지만 나는 그럴만한 존재 따위가 아님을 이미 알면서도

 

내가 외면했던 것은 결국, 스스로를 구원할 권리였다.

 

 

 

피해자고 가해자고 그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압도적으로 내가 피해자인 상황이 많고

 

피해자의 입장에서 누군가에게 의식했던 아니던

 

피해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본인을 가해자라고 설득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것이 가해가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정당화도 합리화도

 

전혀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피해를 입힌 상황이나 사람의 수를 세는 것보다

 

내가 누군가에게 시간 따위를 할애하거나

 

누군가에게 내가 원하는 구원같은 손길이 닿았음이

 

더 중요하고 많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이런 생각 자체를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미 스스로를 구원할 권리는 주어져 있다.

 

누군가를 구원한 사람은 스스로도 구원할 수 있는 것이고

 

난 그저 외면했을 뿐이다.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과거를 잊겠다는 것은

 

더욱 과거의 기억을 상기시켜야만 가능한 것이고

 

미래를 보는 것을 포기하는 건

 

역시나 마지막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의 힘을 들여서 기억을 재편성한다는 건

 

죽고 싶은 사람이 하는 짓이 아니다.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을 더 생각하고

 

더 행할 수 있게 되는 것만이

 

나의 유일한 구원이자

 

나의 업보가 용서되는 길임이 자명하다.

 

어릴 때부터 생각했었던

 

무언가, 내가 생각하는 사람답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전할 수 있을 정도로 통찰할 수 있다면

 

내게도 그런 순간이 주어질까.

 

 

 

기억은 항상 개미지옥처럼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빠져나올 수 없기에

 

잊는다는 걸 선택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잊는다는 건 정말 어려운 길이다.

 

또한, 엄청난 후유증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해야만 했던 이유라는 건

 

그저 나만의 빛을 누군가에게 전달하고 싶었을 뿐일 것이다.

 

나는 조금 더 희망차고 재밌는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 텐데.

 

이렇게 애매하게 남아버린 것은 아쉽긴 하다.

 

언젠가라는 말로 또 스스로를 속이며

 

나만의 빛이 어둠에 삼켜지지 않기를 기도해야만 한다.

 

그것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방법 중 가장 쉽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사정이란 건 있는 법이지만

 

모든 사정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너도 나같이 피차일반인 상황이었을까?

 

똑같이 거짓된 모습이었을 뿐이었을까.

 

적어도 나는 아니었다는 것을 알아주기를

 

내게 나 말고 누군가를 구원할 권리가 주어진다면

 

내가 아닌 그 누군가를 더 우선으로 하고 싶다.

 

그것 또한 구원이기 때문이다.

 

 

내 빛이 네게 닿기를 기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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