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한 나의 이야기

나를 이해하려는 네게 나를 소개하는 안내서

2026

무언가를 향한 마음

vnfma0225 2026. 7. 1. 01:31

손으로 글을 써 나아간다는 것.

 

그것이 펜이든 키보드든 그 무엇이든 간에

 

글 끝이 향하는 방향성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글을 쓴다고 해도

 

나의 우주를 가리키고 있음이 자명하지 않을 수 없으니

 

나의 장점이자 단점이라는 건

 

어떻게 해결해야 마땅할 지에 대해서

 

어떻게 활용해야 좋을지, 어렵고 먼 길이다.

 

 

 

기본적으로 내가 타인에게 연민 따위를 느끼는 것

 

동정을 하는 것, 애를 쓰는 것

 

나의 약한 마음이자 강한 마음인

 

그 애매모호한 장점과 단점 사이에서

 

나는 확실하게 하나만을 깨닫고 있었을 텐데.

 

누군가에게 그런 마음을 가질수록

 

내게 불행이 찾아온다는 것을 말이다.

 

 

오히려 그런 강한 마음은 나를 더욱 약하게 만든다.

 

누구든 내가 도와줄 수 있다는 그런 마음이

 

그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꿋꿋이 고수하는 그 마음이

 

나의 신념이면서도 가장 큰 약점이다.

 

 

 

참 오묘하지 않을 수가 없다.

 

계속 살아감에 있어서 스스로의 약점을 만드는 것이

 

대체 남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항상 상처만 남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다고 그렇게 딱히 이타적이지도 않다.

 

과연 내가 이타적인 사람인가?

 

그저 기회를 얻지 못한

 

힘을 얻지 못한

 

아무런 재능을 얻지 못한

 

이기적이지만 도태된 사람이 아닐까?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스스로에 대한 의문이 사라지지 않는다.

 

어째서 남을 위한 연민과 마음은

 

항상 나에게 불행과 상처로 돌아올까?

 

어쩌면 나의 방식 자체가 틀려먹은 것이 아닐까?

 

내가 행하는 구조가 뭔가 뒤틀린 것이 아닐까?

 

본인을 우선시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역설적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올라갈 수 있을 텐데.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하는데.

 

되어야만 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자유도, 연민도, 마음도

 

모든 것을 표현하고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됐어야 했을 텐데.

 

어쩌다 이렇게 애매하게 되어버린 걸까.

 

내 마음은 지금 무엇을 보고 있을까?

 

 

나는 항상 운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또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운이 없다는 말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언제나 유리하거나 불리한 것을 나눈다.

 

예로 부패와 발효라는 개념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행운과 불행 따위는

 

실제로 같은 개념이고

 

결국 합집합은 불확실함에 있으니

 

나의 길에서 덜 후회하는 것으로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곳으로

 

나의 마음이 온전히 전해질 수 있는 것과 장소는 무엇일까?

 

누가 진실된 마음을 알아주고

 

누가 진실된 이해심을 품을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조차

 

스스로 생각을 하면 할수록

 

앞을 가리는 안개 따위가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게 항상 좋은 효과만을 일으키지는 않는다.

 

너무 많이 알고 있다라거나

 

너무 많이 이해하려고 한다거나

 

뭐든 과한 것은 좋지 않으니

 

나 자신이 해야만 하는 것은 결국

 

내가 하지 말아야 했던 것들 뿐이다.

 

남보다 자신을

 

감정보다 이성을

 

평등보다 이익을

 

나는 이상에 갇혀 이성적으로 행하지 못한 게 아닐까?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 보면 순수하다는 말을 듣는데

 

나는 사실 그런 점이 뭔지 잘 모르겠으나

 

그냥 애 같다는 말같이 들린다.

 

정신적으로 어리다거나 그런 것이 아닌

 

어린아이의 순수함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틀리지는 않은 말이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아직도 너무 많다.

 

근데 아무리 해도 해도, 이룬다고 가정해도

 

아무런 감정도 생기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행동인 것인지 안다.

 

나의 메마른 감정 속에서

 

오아시스를 찾아내기란 너무나 어려운 일일 뿐이다.

 

그 속에서도 이미 보이는 오아시스조차 존재하지만

 

내게 허락되지 않을 뿐이다.

 

나는 무엇을 해야만 할까.

 

그저 길을 잃은 탐험가와 뭐가 다를까.

 

 

 

나와 같은 마인드와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은

 

무슨 고민을 하면서 살아왔을까 궁금하다.

 

뭐 그중에서도 독특할 것 같지만

 

내가 아닌 내가 될 수 있을까?

 

나는 나라는 것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나라는 걸 포기할 수 있을까?

 

그런 선택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올 텐데

 

나는 할 수 있을까?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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