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와 멀어진다는 것을 각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애초에 나는 누군가에게 의지를 하려고 하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방식에서 큰 차이가 있지 않았을까?
나는 너를 위한다며 속이고
나 또한 나를 위한다며 속이고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이 관계 속에서
그저 합리화를 했던 것이 아닐까?
누군가를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려 하지 않는 것을
과연 그 사람을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너와 나의 관계는 언젠가 무너진다고 해도
그 미래가 확정되어 있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이 소중하지 않을 수 없지 않을까?
단순히 나의 이기적인 부분이 아닐까?
나는 어째서 그런 선택을 하게 되기 시작한 걸까.
아마, 내 스스로가 죽고 싶다는 생각을 전제하에
아니, 내가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전제하에
더 과거로 간다고 한다면
나는 내가 죽는다고 확신하고 있음을 전제하에
그저 사람들에게 상처받고 배신당함으로써
나는 모두가 악마인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자유와 마주친 순간부터
그것이 가짜의 세계임을 알게 되었고
나는 어떻게 해야할 줄 모르는 그저 어린이 같았다.
하나 둘, 하나 둘
그저 새로운 인연이 생기고
그만큼의 헤어짐도 있었지만
헤어짐의 대부분 이유는 나 자신 탓이 아닐까 싶다.
가까워지고 싶으면서도
어느정도의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
이건 나의 병도 한몫했겠지만
어째서인지 가까워지면 헤어질 것이라는 그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게 확실한 부분을 밑받침하는 근거 따위는 없고
당연히 그렇게 헤어진다고 하여도
현재의 시간과 감정이 소중하다는 건 자명한 사실인데.
나의 이런 부분 때문인지는 몰라도
헤어지고 싶지 않은 인연조차
내가 서투른 탓인지 헤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아니, 서투름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저 내 잘못이 아니었을 뿐이다.
나만 이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도 다 나 같은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해되지 않는 것들을 이해하려고 하니
무언가 깊이 크게 느끼는 바가 늘어나는 것만 같다.
내게 주어진 환경이나 변수 따위는 내가 조절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구분해야 할 뿐이다.
더 이상 기억할 수 없을 수도 있겠지만
내가 영원을 약속한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나는 그들을 항상 내 영혼 속에 같이 둘 것이다.
그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영원적 약속이자
나의 신념이라고 생각하니까.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누군가의 목소리도
기억해내고 싶어도 다시 기억할 수 없는 그 누군가도
모두 소중한 인연이었기에
생각하려고 해도 짙은 안개가 끼는 것은
내가 과거를 아직도 부정하는 것이 아직 남아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부터 시작해서 첫 인연이 시작된 장소, 대화까지도
흐려진다고 해서 기억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항상 나의 우주 어느 곳에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멀어지고 멀어지려 해도
내게 있어서 감정과 기억을 선물해 준 인연이란
잊힐 수 없는 법이다.
그것이 운명이라는 거니까.
나는 필히 그것들을 지키기 위해서
인연이라는 걸 믿어왔는 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영원 맹세를 하기 위해서 말이다.